고전 철학 바로 읽기
최근 어떤 철학교수가 방송에서 했던 말이 인상 깊었다.
“철학은 삶을 살아가는 도구여야 한다.”
그리고 오늘 SNS를 보다가 정확이 이 말과 반대되는 글을 보고 다시 그 얘기를 떠올렸다. SNS 뿐만 아니라 방송에 나와 이야기하는 철학교수 중에서도 철학이나 고전을 일종의 '성역'처럼 여기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서로 상충되는 수많은 철학적 주장이 있는데, 그 중 하나를 골라, 그걸 현대 사회에 그대로 들이밀며 그게 정답인 듯 말한다. 유명한 철학자의 유명한 말이니 무비판적으로 신뢰하는 전형적인 “권위에 의한 오류”로 볼 수 있다.
누군가는 플라톤의 철인정치를 진지하게 현대에 적용하며 현재 대한민국에 ‘哲人(철인)’이 없는 걸 안타까워한다. 그 글을 보며 ‘정말 그 책을 이해하고 읽은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철학은 모순의 역사다. 시대에 따라 처한 상황이 다르고, 질문이 다르고, 맥락이 다르다. 그래서 철학을 읽는다는 건 한 명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 생각이 태어난 시대를 함께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를 시대적 맥락 없이 보면, 존재에 대해 탐구한 데카르트 개인의 사유로만 보인다. 하지만 그 시대를 보면 종교가 진리를 독점하던 시기가 끝나갈 무렵에 한 철학자가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넘어가는 역사적 선언’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철학도 문학도, 시대를 이해하지 않으면 ‘멋진 문장’으로만 소비될 뿐이다. 그 문장이 태어난 배경까지 함께 읽을 때, 그 시대에 철학자가 고민한 과정을 함께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래야만, 그 문장을 오늘의 나에게 진짜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