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치핀]을 읽는 부모의 고민

학교는 우리를 어떻게 키우고 있을까?

by 그림공장

요즘 읽는 책 중 가장 재미있는 책 중 하나가 바로 세스 고딘의 린치핀이다. 이전에 읽었던 세스 고딘의 책이 좋았던 만큼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역시 기대만큼 흥미있게 한 장 한 장을 넘기고 있다. 그런데 독서 중에 자꾸만 멈춰 서서 잠시 책장을 덮게 된다. 그가 던지는 글이 단순히 끄덕이며 받아들이기보다 내 삶과 내 아이의 양육과 교육까지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이기 때이다.


오늘 읽은 장의 제목은 "우리는 세뇌당하고 말았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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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내용에서도 교육에 대한 비판적 언급이 있었지만 이 장은 본격적으로 '학교'가 우리에게 어떻게 기능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우선 책에서 저자는 '공장'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여기서 공장은 단순히 제품을 만들어내는 곳이 아니다. 시키는 대로 일하고 정기적으로 급여를 받는 조직 모두를 '공장'이라고 정의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공무원과 대기업,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까지 우리 주위 대부분이 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공장은 인간 세상에 원래부터 존재했던 게 아니다.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물건 생산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갑작스럽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렇게 공장이 생겨나면서 공장을 가진 자본가들에게는 두 가지의 문제가 발생했다.


첫째, 공장노동자를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둘째, 과잉생산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책에서는 이 두 가지 모두를 해결한 것이 바로 '학교'였다고 말한다. 첫 번째 문제에 대한 비판, 즉 학교는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는 게 아니라 가성비 좋은 직원을 만들어낸다는 부분은 다른 책이나 강연을 통해서도 익숙하게 들었던 이야기다. 그래서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두 번째 비판의 지점이었다.



남을 따라 물건을 사는 행동은 우리가 타고난 유전적 자질이 아니다.

최근에 '만들어진' 욕구일 뿐이다.



1890년대 10대들은 대부분 어쩌다 한 번 옷을 사 입는 것이 전부였다. 신문, 잡지, 책도 거의 사지 않았고 화장품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에게 그러한 생활을 요구한다면 아이가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중학교 시절을 지나면서 브랜드에 대한 소비욕구와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느낌을 배웠던 걸로 기억한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시장에서 산 운동화를 신어도 마음에 들면 그만이었고, 브랜드를 들어도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가고, 친구들이 브랜드 운동화를 신기 시작하자 잘 신던 시장 운동화가 더 이상 예쁘지 않았고, 부끄럽기까지 했다. 내가 기억하는 '브랜드'에 대한 욕구의 첫 순간이었다.


지금의 나는 비교적 남과 비교하지 않고 살아가는 편이다. 혼자 일하는 환경과 성격 덕분에 그런 면에서 좀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가 되고 나니 이 고민이 다시 찾아왔다. 우리 아이들은 영어유치원을 보냈는데, 아무래도 돈이 여유가 있는 친구들이 많다. 그래서 이번 여름에 몇 명의 친구는 미국으로, 아니면 가까운 해외라도 여행을 간다는 얘기를 아이가 전했다. 비단 여행이 아니라도 다른 사교육을 뭘 시킨다거나 생일에 선물을 뭘 하는 지 하나하나 비교하자고 치면 끝도 없이 이어질 거다.


나로써는 상황도 안 되고, 생각도 없었던 부분들이 아이에게는 비교를 하게 하는 부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됐다. 모든 건 각자 환경이나 취향에 맞게 선택하는 거라고 아이게게 이야기하지만, 어느 부분까지 해줘야 할까 하는 부분도 고민하게 된다.


다른 이야기지만, 양육에 있어서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있다.


“아이들은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을 구분하기보다는 스스로 좋아하는 사람의 말과 행동을 따라 배운다”



그렇다면 아이가 좋은 사람으로 자라려면 두 가지 조건만 갖추면 된다. 부모가 좋은 사람일 것, 그리고 아이가 부모를 좋아할 것! 이 두 가지가 충족되면 자연스럽게 아이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배운다.


물론 여기에서의 '좋은 사람'에 대한 기준은 모든 부모가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가 린치핀으로 자라길 바란다면? 내가 그런 태도로 살고 아이가 나를 좋아하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결국, 아이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나'로 돌아온다. 앞으로 내 아이가 삶을 살아갈 20년, 30년 후의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나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아이가 어떤 학교를 나와서 어떤 직업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다만 부모로서 내 아이가 어떤 환경에 있든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태도를 가지길 바란다. 그리고 숫자로써의 목표나 직업으로써의 목표보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목표와 꿈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내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면 좋을지 생각하고, 오늘 내가 그 모습으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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