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빠진 뉴진스 따라하기의 한계
얼마 전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B주류 경제학’에서 케이팝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작년에 크게 흥행한 케이팝데몬헌터스 이야기와 오랜만에 나온 혼성 그룹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올데이 프로젝트, 그리고 경제 채널답게 각 기획사의 재무구조 분석도 이어졌다.
그중 꽤 길게 이어진 이야기 중 하나가 2024년 이후 케이팝이 왜 지루하게 느껴지는가였다.
패널로 나온 김윤하 평론가는 그 이유를 “상향평준화로 인한 지루함”이라고 설명했고, 다른 패널들도 공감하며 대화는 마무리 됐다.
하지만 나는 이 대화에서 뭔가 중요한 부분을 놓쳤다고, 혹은 일부러 피했다고 느꼈다. 2024년 이후 케이팝 음악이 지루해진 진짜 이유는 다른 어떤 분석보다 ‘뉴진스'라는 한 그룹의 부재 때문이 아닐까? 누가 뭐라 해도 2024년 초까지 트렌드를 선도하던 그룹이었기 때문이다.
상향평준화가 문제라기보다 ‘원본의 사라짐’이 문제다
케이팝의 완성도는 분명 높아졌다. 앨범 퀄리티, 퍼포먼스, 비디오의 영상미, 스타일링 모두 평균 이상이다.
그런데 음악을 들어도, 무대를 봐도, 유튜브나 sns를 통한 마케팅을 봐도 ‘새로운 충격’이 잘 오지 않는다.
패널들의 말처럼 단순히 “다 잘해서 비슷해 보이는” 상향평준화도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나는 이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평균치가 높아져도 시장을 흔드는 ‘원본’이 있다면 지루할 틈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원본이 2024년 이후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뉴진스는 단순히 잘된 아이돌이 아니라 ‘감각을 만든 팀’이었다
뉴진스는 2022년 등장과 동시에 케이팝 전체의 결을 바꿨다.
Y2K를 가져오되 과하지 않은 방식
감정이 아닌 감각을 전면에 둔 뮤직비디오 스타일
미니멀하고 청량한 사운드
편안한 일상성과 팬덤보다는 ‘대중’을 향한 기획
등으로 빠른 시간에 많은 대중에게 인기를 끌었다.
이런 개별적 요소들만 보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면을 보면 그 요소를 구성하기에 앞서 철학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즉, 뉴진스는 “자연스럽게 만들어 보자”라고 해서 만들어진 그룹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창작 생태계가 모여 만들어낸 하나의 결과물이었다.
따라할 수 있는 것은 ‘겉모습’ 뿐이다
뉴진스 트렌드가 케이팝 전체를 흔들자 여러 제작자들은 그 스타일을 재현하려 했다.
편안한 음악,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스타일, Y2K 패션, 틱톡에 잘 맞는 훅 등
하지만 이건 결과물의 모양이지 그걸 만든 핵심 의도가 아니다.
마스다 무네야키가 말하는 '따라하기'의 한계
츠타야 서점 창업자 마스다 무네야키는 책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만든 북카페는 고객의 기분으로 '경치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 읽는 시간을 즐길 수 있다면 멋지겠다'는 생각에서 탄생했다.
한편, 뭔가 돈 되는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똑같이 따라하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일이 잘 안 되면 고객의 시선에서 개선을 시도하지만, 후자는 '왜 돈이 벌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 뿐이다. 그래서 개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케이팝 시장이 그렇다. 뉴진스가 만들어낸 감각은 ‘편안함’, ‘청량함’ 같은 키워드가 아니라 대중이 피로를 느끼지 않으면서도 새롭게 느끼는 소비 경험이었다. 그래서 데뷔 이후 신곡을 발표할 때마다 저마다의 새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많은 제작자가 이를 스타일·패션·톤 정도로 오해하고 복제했다. 그 결과는? 만듦새는 좋지만 다 비슷해 보이는, 즉 “잘 만든데 놀랍지 않은” 음악들이 쌓여간다. 그런 음악들을 굳이 찾아 듣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그래서 2024년 이후 케이팝은 지루하다
뉴진스는 단순히 인기가 많은 그룹이 아니라 시장을 움직이던 감각의 중심축이었다. 이전에 서태지, sm의 몇 아이돌 그룹들, 빅뱅, 블랙핑크, bts가 그랬던 것처럼.
그 축이 잠시 비자 시장에는 겉모습만 남았고, 안에 담겨야 하는 ‘철학’과 ‘문제의식’은 빠져 있다.
민희진은 물론 매우 뛰어난 기획자, 프로듀서지만 그와는 다른 색깔로 새로움을 공급할 기획자나 아티스트가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당장 보장된 돈을 벌기를 원하는 기획사가 그 창작자에게 무모한 기회를 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