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8살이 예비초등친구들과 만났다.
8살이 이렇게 작았었나? 싶게 쪼꼬만 귀요미들이 앙증맞았다.
아직 언니가 되고 싶지 않다는 여자친구는 자꾸 아기말투로 말을 했고
절대 발레는, 무용은 하지 않겠다는 남자친구 한 명은 여자스러운 모든 것에 대한 거부가 심했다.
그리고 조금 늦게 합류한 동생이 줄줄이 둘이나 있는 형아는 규칙에 엄격했다.
코로나로 유치원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집에서 자유롭게 있던 이 아이들이 과연 입학을 한다고 학교에 갈 수나 있겠나 싶어 걱정이 앞서는 엄마들. 지금까지는 텔레비전도 실컷보고 게임도 실컷하고 먹고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놀고싶으면 노는 그야말로 자유를 만끽했는데 말이다. 학교에 가면 돌아다니고 싶어도 앉아 있어야 하고 조금 싫어도 참아야 하고 친구들이 서운하게 해도 쿨하게 넘겨야 할 때도 있을 건데.... 하며 시작된 걱정은 멈출 줄 모른다.
나 역시 큰아이 학교 보낼 때 여러가지 걱정이 앞섰던게 사실이다. 아니 나의 걱정은 7세가 될 때부터 이미 시작되어 큰아이 7세가 되면서 입학을 위한 기도모임을 만들었더랬다. 기도한 건 잘한 거지만 걱정한 걸 보면 왜 그랬나 싶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잘 적응하기 때문이다. 적응뿐이겠는가 어쩌면 우리의 걱정과 정반대로 훨씬 훌륭하게 해내기도 한다. 물론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처음 스튜디오를 찾은 아이들은 서먹했다. 말하기도 쑥쓰러워 자기 이름만 말을 하는데도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가운데 보수볼을 드럼처럼 두드리며 리듬을 공유했다. 서로 리듬을 공유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친밀감을 선사한다.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어보려고 인위적인 노력을 하는 대신 함께 손바닥으로 리듬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아이들 사이에 있던 서먹함이 점점 풀어진다. 박자에 맞추어 볼을 두드리다 누군가 엉뚱한 박자를 두드리자 갑자기 웃음까지 터지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선생님 박자는 간데 없이 자기들 마음대로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래 그래야 아이지'라며 제멋대로 장난치는 것을 조금 지켜보니 어느새 베프되었다는 아이들.. 매주 한 번씩 만나게 될 이아이들과의 만남이 설레인다. 귀여운 녀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