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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Aug 02. 2022

트라우마를 다루는 예술가의 자세

누군가는 오열했고 누군가는 화를 냈고 누군가는 쓰러졌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깊은 상처는 아물어가지만 커다랗게 남겨진 흉터는 매년 이맘 때 쯤 한번씩 성을 낸다. 그들만의 일이라고 하기엔 내가 너무 아팠고 모두가 아팠고 나에게도 너에게도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지나칠 수 없었다. 우리는 모두 트라우마를 안게 되었다. 그래도 당사자의 그것과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나의 슬픔은 ,나의 힘듦은 그들의 것과는 도무지 비교가 되지 않으며 그들의 슬픔과 그들의 아픔은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는 크기라는 것은 분명하다.

공감. 그들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을까? 그들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리만큼 어려운 것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그들의 슬픔을 다루었다. 누군가는 거리로, 누군가는 현장으로, 누군가는 글로, 그림으로, 무대로 마음을 전했다.  어떤 방법이든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조용히 옆자리를 지켜주는 일, 가만히 손을 잡아주는 일, 행여 내 눈물이 슬픔을 가중시키기라도 할까 흐르는 눈물을 애써 삼켜주는 일, 삼키지 못하고 흐르는 눈물에 울 자격도 없는 것 같아 숨을 죽여야 했던 것은 섣부른 위로보다 따뜻했다. 그만큼 조심스러워야 했다.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만보다 그 슬픔에 다가가도 되는지 낮은 마음으로 자신을 점검해야 옳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그들의 슬픔을 아는 척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상처를 감싸주겠다며 다짜고짜 소독약을 부을 일이 아니다. 

트라우마는 몸을 정신과 분리시켜 일상 생활을 어렵게 만든다. 예전에는 트라우마의 치료를 위해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는 방법을 택하였지만 이로인한 재트라우마로 오히려 증상이 악화되는 어려움을 가졌다. 따라서 최근에는 과거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느라 다시 고통속으로 빠뜨리는 대신 현재의 몸 상태에 집중하는 감각운동법 등이 각광을 받고 있다. 현재 자신의 몸 상태를 주의 깊게 알아차리는 것은 트라우마로 인해 분리된 심신을 통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신체를 도구로 하는 무용은 이런 트라우마에 도움을 주기에 너무나 좋은 매체이다. 은유와 상징으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움직임은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다른 매체보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더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굳이 말로, 재현으로, 호통으로 그렇게 사실적으로 드러낼 필요가 없다. 아니 그렇게 드러내는 것은 재트라우마를 넘어 새로운 트라우마를 안기는 것이다. 움직임은 그 어떤 이미지보다 자극적이며 그 어떤 분명한 말보다 강한 메시지를 남긴다. 움직임의 영향력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더 조심스럽게 사용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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