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들이 농구에 다녀와서는 팔이 아프다고 했다. 비 온 후라 아이들 신발의 물기와 농구코트의 마찰로 바닥에 걸려 넘어지면서 오른손으로 짚어 왼쪽으로 넘어졌다는데 왼쪽 손목 윗부분 팔이 아프다는 것이다.
나 역시 무용을 하면서 숱한 부상에 시달렸다. 지금도 어디 한 군데 말짱한 곳이 없는 것 같다. 함께 목욕탕가기 창피하다 할 정도의 마루에 구르고 딛고 미끄러지며 생긴 온 몸의 멍자국은 애교. 접질리고 인대 늘어난 것 정도는 예사, 허벅지에서 옷 찢어지는 소리가 날 정도의 근육파열에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물리치료를 받거나 침을 맞아도 매일의 새로운 아픔이 더해지다 보니 나아지지 않아 왠만해선 병원에 가기보다는 참아냈다. 더군다나 이런류의 통증은 나를 더 혹사시키는 촉진제가 되어 몸 어딘가가 아파야 열심히 한 듯 안심이 되었고 아프지 않는 날은 게으름을 피운 것 같아 죄책감에 시달렸다.
이런 나의 기준들이 나도 모르게 아들에게 작동했다. 아마도 열이 펄펄 끓었다면 병원으로 달려갔을 터였다. 문제는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영역이라 무의식중에 아들 역시 참으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굳이 병원에 가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 같은 잘못된 판단으로 ‘진짜 아파?’와 ‘손목 돌려봐’를 반복했다. 아들도 별로 아파하지 않는 것 같았고 나랑 눈이 마주칠 때만 유난히 아픈 듯 얼굴을 찡그렸다. 아무리 봐도 병원에 안가도 될 것 같았다. 그러다 아픈 데 병원도 데리고 가지 않았다며 섭섭해 할까싶어 병원을 찾았다. ‘엄살인 것 같은데...’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아,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필름을 보는 순간. ‘아이쿠’ 팔이 부러져 있었다. 의사가 부러졌네요 말하자마자 ‘아까 엄마가 엄살이라고 말해서 진심으로 미안해’라며 바로 사과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지나온 경험이나 형편에 따라 만들어진 나의 기준안으로 남을 우겨 넣으려 한다. 세션을 하며 자주 느끼는 부분이다. 아이들을 수업하다 보면 ‘친구가 때렸어요’, ‘너무 아프게 해요’ 라는 호소를 자주 듣는데 상대방 아이는 ‘제가 안 그랬어요’, ‘안 아프게 했는데요’ 라며 항변한다. 자기는 전혀 안 아프게 살살했는데 상대는 아프다고 한다는 것이다. ‘안 아프게’는 순전히 자기 기준이다. 그 정도에 나는 안 아프니 너도 안 아픈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서로 안마를 해 줄 때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람은 손만 대어도 아프다고 도망을 가는데 어떤 사람은 온 힘을 다해 어깨를 주물러도 시원하다고 할 뿐이다. 아픈 정도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이런 차이는 비단 신체 자극뿐만이 아니다. 마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냥 던진 말에 어떤 사람은 가볍게 지나가는 말로 듣고 웃어 넘기는가 하면 어떤 이에게는 내내 마음에 상처로 남는다. 던진 사람은 뭘 그거 가지고 그러느냐 할 것이다. 몰랐을 것이다. 자기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것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 힘들다고 사정얘기 하는 말을 끊으며 ‘뭘 그딴걸 가지고 힘들다 그러냐 나는 더한 일도 겪어봤다’는 사람도 종종 만난다. 그 역시 그 정도로 나는 안 아팠으니 너도 그 정도는 괜찮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프려면 강도가 훨씬 더해야지 그 정도로 징징거리지 말라는 것이다. 말이 되었든 행동이 되었든 나의 기준을 절대적으로 남에게 맞추었다가는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 있다. 관계 안에서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아닌 상대의 상황과 처지에 더 민감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나에게 채찍질 당하는 나의 상황과 처지도 생각해보면 좋겠다. 혹 나는 지금 너무 지쳐 곧 쓰러질 지경인데도 모르고 있거나 터져 나오는 눈물을 꾹꾹 참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는데 그런 나를 알아채지 못하고 더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 잘 참아내고 있어서 아무렇지 않은 듯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자기체면을 걸거나 스스로의 어려움을 애써 외면하고 있진 않은지 먼저 나의 상태와 상황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 괜찮은가? 지금의 나를 제대로 알고 있나? 나를 잘 알고 나와의 관계가 건강할 때 타인과의 건강한 관계도 기대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