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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영 Aug 02. 2022

암이라고요?

단풍이 이렇게 예뻤던가? 붉게 물든 나무도 노랗게 물든 나무도 너무나 예쁘고 높푸른 하늘의 색도, 어느새 차가워진 공기도 감사한 하루하루이다. 엊그제 기분 좋은 그룹과 아차산을 올랐다. 오르는 내내 내려올 걸 왜 계속 올라가냐 투정했지만 사실 올라서서 바라보는 한강과 도시의 경관에 가슴이 시원해져 상쾌했다. 곳곳에 너른 평지를 보면 춤을 추고 싶은 욕구도 슬슬 올라왔지만 함께 한 이들이 나 때문에 창피하면 안되니까 꾹 참았다. 위드코로나가 되어서 그런가 가을날이 너무 예뻐서 그런가 엄청 많은 사람들의 모습에 다소 놀랍기도 한 산행이었다. 


어느 날 아침 세수하며 거울을 보는데 목에 있는 근육의 모양이 이상해져 있었다. 목 아래 쇄골 중심에서 갈라져 귀 옆까지 길게 이어지는 근육은 ‘흉쇄유돌근’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거울을 보며 얼굴을 왼쪽 오른쪽으로 돌려보니 오른쪽 근육은 잘 있는데 왼쪽 근육이 사라져 있는 것이다. 쇄골을 맛사지하고 왼쪽 어깨를 이리저리 돌려 이완시키고 되도록 왼쪽 목을 위아래로 길게 늘리고 나니 다시 나타난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이상을 감지하고서도 꽤나 긴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계속 신경은 쓰였고 왼쪽 흉쇄유돌근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원래 턱이 좋지 않았던 터라 모든 원인이 턱일 것이라 추측했다. 예나 지금이나 병원을 가도 신통치 않은 고질 통증들과 동행하는 삶이라 이번에도 병원에 가볼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더구나 병원에 가서 ‘내 흉쇄유돌근이 사라졌다’고 말하기엔 너무나 이상한 사람같지 않은가? 턱 근육이 목 근육을 잡아당기나? 혼자 이런저런 상상을 하던 어느 날. 왼쪽 턱아래, 흉쇄유돌근 끝자락 앞부분에 커다란 알사탕같은 것이 불룩 올라왔다. 마치 쥐가 나면서 근육에 혼자 힘이 들어가는 것처럼 턱 밑이 뻐근하게 스스로 수축하는 느낌이 들어 거울은 보았더니 심상치가 않았다. 무언가 그냥 두기엔 두려움 같은 것이 찬바람이 옷깃 속에 스윽 스치는 것처럼 지나갔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어디 병원으로 가야할지 고민하다가 누군가가 포스팅한 사진이 나의 턱과 같은 모습인 것을 보고 그의 진료과정을 따라 이비인후과를 택했다.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초음파를 보던 의사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악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종양이란다. ‘악성이면 암이에요?’ 물으니 양성이어도 악성이 될 확률이 높아 무조건 수술해야 하니 큰 병원으로 가란다. 다시 전문병원을 찾아 피도 뽑고, 바늘로 조직을 수차례 찌르고 또 찌르는 검사도 받았다. 평소 도수치료와 체외충격파 치료가 너무 아파 치료대신 매일 조금씩 아프기를 택하는 삶이었지만 이번엔 아파도 참아야 될 것 같은 책임감 같은 것이 생겼다. 내 삶이 나만의 삶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은 감정의 이쪽 끝과 저쪽 끝을 반복해서 오고갔다. 그러고 보니 쇄골 옆에 없던 혈관이 하나 커져 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턱 아래 알사탕으로 무언가 영양분을 직접 보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암으로 돌아가신 아빠가 처음으로 꿈에 나왔던 것도 무언가 시나리오의 복선같은 느낌이었다. 임파선일지도 모른다고 의사가 그러던데. 그래서 그렇게 피곤했던가 싶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들이 갑자기 일었다가 또 차분하게 가라앉기를 수차례. 


결론부터 말하자면 암은 아니었다. 다행이라고 쓰기에는 암과 투병중인 이들에게 너무 죄송하여 다행이라는 말은 묻어두고 싶다. 하지만 그 일주일은 삶에 다양한 변화를 만들었다. 꼭 해야 하는 일과 버려야 할 것에 대한 선택(버린다는 말보다 못하는 일은 빠르게 포기), 꼭 만날 사람과 피해야할 소모적인 관계(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인 몇 명 수신차단), 무엇을 먹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먹거리는 실천보다는 고민단계), 급하게 하며 살아야 할 말들과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려야 하는 말들(아이들에게 하는 잔소리같은 것들? 그럼에도 엄청 많이 하고 있긴 하지만)을 생각하게 되었다. 피곤하면 쉬기로 했고 쉬다보면 꼭 해야 할 일들도 조금 미뤄놓게도 되는데 오늘 안하면 큰일 날 것 같은 일들도 사실 그럴 일이 아니었다는 걸 조금씩 깨달아갔다.


이런 시간을 보내서 그런가 유독 단풍이 예쁘다. 가을이 가는 시간이 아깝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 내가 뛰는 건지 삶의 트래드밀에 얹혀져 억지로 끌려가는 건지도 모르고 달음질 하던 삶에서 딱 일주일 강제 멈춤을 경험하고 나니 삶은 더 천연의 색으로 반짝인다. 우리 독자들에게 그런 탄츠위드가 되고 싶다. 잠시라도 스스로를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 잠시 몸의 상태를, 마음의 상태를 그리고 삶의 형태를 점검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드리고 싶다. 그래서 더 건강하고 더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투병중인 모든 환우분들의 쾌유와 탄탄이들의 환절기 건강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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