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글빙글 밥알
교토 사람들의 두 번, 세 번 빙빙 돌려서 말하는 화법은 한국인들에게도 엄청 유명한데 그중 오차즈케 이야기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을까 싶다. 집을 방문한 손님이 돌아가야 할 때가 지났는데도 눈치 없이 계속 앉아 있으면 ‘혹시 오차즈케라도…?‘라고 하는데 그게 사실은 이만 집에 가라는 뜻이라는 얘기다.
오차즈케는 쉽게 말하자면 밥을 물에 말아먹는 간단한 음식이다. 밥에 우메보시나 짭짤한 반찬을 좀 올리고 그냥 물에 말면 심심하니까 찻물을 부어 먹는 것인데, 녹찻물 이외에도 살짝 간을 한 여러 가지 육수를 쓰기도 한다. 장어덮밥 집에서는 장어 육수, 도미 오차즈케가 나올 때는 도미 육수, 이런 식으로.
나는 오차즈케를 엄청 좋아한다. 국밥 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다. 물에 섞인 지 얼마 안 됐을 때 퍼지지 않은 밥알의 느낌이 좋다.
그래서 교토에 갔을 때 오차즈케를 먹으러 갔다.
이 집은 원래는 가이세키 요릿집이지만 점심에는 오차즈케를 판다. 저기 보이는 저 까만 도자기 솥이 내가 먹을 밥인데, 갔을 때가 이제 막 햅쌀이 나오기 시작할 때라 윤기 좔좔 흐르는 햅쌀로 밥을 짓고 밥을 뜨기 전에 윤기를 자랑도 하셨다. 한 번에 많이 떠서 주는 것이 아니고 저 밥솥에서 한 번 먹을 만큼씩 계속 밥을 떠준다.
이것이 그날의 한 상. 얇은 겹이 겹겹이 있는 계란말이와 여러 반찬. 왼쪽 위는 생계란 노른자이고 오른쪽 위는 오차즈케에 취향껏 넣을 김과 아라레. 상의 가운데가 오늘의 메인, 도미이다.
된장과 시소, 와사비, 양하와 깨 등등으로 양념이 되어 있는 도미는 밥이 나오기 전에 따로 맛을 보고, 밥이 나오면 오차즈케를 해 먹으면 된다.
계란말이와 도미를 맛보는 동안 밥이 다 지어져서 첫 밥은 이렇게 계란 노른자와 먹었다. 비릴 것 같지만 일본은 생계란을 많이 먹어서 생식용으로 계란 생산을 관리해서 그런지 비린 맛은 없다. 아는 맛이지만 설명하긴 힘든데, 왠지 일본 사람들이 해외에 오래 있으면 이 맛이 생각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맛이다. 한국 사람이 김치 생각이 나는 것처럼 말이다.
도미 육수에 말은 오차즈케. 생선이 뜨거운 물에 살짝 샤브샤브 된 맛이 별미!
그리고 마무리 디저트.
와인 냉장고에 붙은 스티커는 게이샤의 명함들이다. 요즘 게이샤들은 저렇게 귀여운 스티커 명함을 만드는데, 자기가 자주 가는 집에 저렇게 스티커를 붙여놓는다고 한다. 여기가 교토 기온이니, 말하자면 기온의 인플루언서 인증 맛집인 셈이다.
밥을 다 먹고 나오니 비가 오고 있었다. 카운터에 택시를 부탁했더니 고풍스럽게도 우산을 받쳐 들고 차문을 열어줬다. 그냥 간단하게 밥에 물 말아먹는 건데, 굳이 식당까지 가서 오차즈케를 먹는다고 하면 유난스럽다고들 할지. 하지만 기분 좋은 점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