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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ating Around

향수를 달래는 Ama

산 세바스티안 출신 아저씨가 요리하는 스페인 식당

by Art Around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는 것 같은 식당, Ama에 다녀왔다. 물론, 나의 향수는 아니다. 여기서 얘기하는 향수는, 주인아저씨의 향수다.


해외를 다니다 보면 가끔, 정말 외진 곳에서 정말 소박한 한식당을 맞닥뜨릴 때가 있다. 보통은 전문 요리사도 아니었던 사장님이 인테리어는 마치 한국의 어느 동네에나 있을 법한 김밥집이나 돈까스집처럼 해놓고 화려하지 않은 요리들을 만드는 조그만 식당들 말이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이겠지만 화려한 큰 한식당에 갔을 때와는 달리 이런 식당들에서는 사장님의 고향에 대한 향수가 느껴진다. 어릴 때 그냥 수시로 드나들던 '레스토랑'이 아닌 '밥집'들, 작은 한국, 아니 한국이 아니라, 그냥 자기가 편하다고 느꼈던 그 공간을 이 작은 담벼락 안에 꾸며놓고 싶은 그 마음 말이다.


그런 향수의 마음이 서점이나, 커피숍이나, 이런 것보다는 늘 아궁이에 따뜻하게 불이 지펴지는 식당의 모습으로 주로 나타나는 것이 신기하다.


이 날은 뒤늦은 봄날에 한여름 같은 장대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주변에 다른 식당이나 커피숍도 없는 그런 주택가 한가운데 뜬금없이 있는 이 식당을 들어서니, 진짜로 아궁이가 있는 것이 아닌데도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 같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어린 시절 장마철 하굣길에 억수 같은 비가 내리면 우산을 써도 쫄딱 젖어서 집으로 뛰어들어가곤 했는데, 그러면 엄마는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방바닥에 뜨끈한 불을 넣어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저씨는 스페인에서도 미식의 도시로 유명한 산 세바스티안 사람이라고 했다. 부산에서 스페인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운데, 그중에서도 더 희귀한 바스크 지방, 그것도 산 세바스티안 사람이 살고 있었다니! 문득 작년에 빌바오에서 만났던 한국인 아저씨 생각이 났다. 빌바오에 한국인이 가장 많을 때 5명이었다고 했다. 현지 사람과 결혼했다 이혼하고 딸을 한 명 데리고 사는 그 아저씨는, 이제 한국에 부모님은 다 돌아가셨고 큰 형은 영국에, 둘째 형은 캐나다에 살고 있어 한국에 돌아갈 일이 없다고 했다. 마치 남극에서 어떻게 어떻게 뉴질랜드까지 빙하를 타고 흘러와 동물원에 가지 않고 들판에서 살고 있는 펭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올리브는 그냥 올리브가 아니라 마늘과 파프리카 등이 들어가 약간 짭짤하면서도 술안주로 딱인 맛이었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스타일이라고 한다.

여러 개의 핀초(스페인 대부분 지방에서 타파스라고 부르는 것을 바스크 지방에서는 핀초라고 부른다)를 시켰는데 염소 치즈를 올린 핀초, 조개관자를 올린 핀초와 새우를 올린 핀초였다. 모두 맛에 개성이 있었고 특히 염소 치즈는 그냥이 아니라 살짝 설탕을 입혀 겉면을 구운 것인지 바삭하고 달콤한 식감이 같이 있어 좋았다.

게살이 올라간 감자 오믈렛.

오징어 먹물 빠에야와

역시 술안주로 시킨 하몽. 하몽 역시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살짝 씹히는 소금과 다른 간이 조금 되어 있었는데 여기까지 먹으니 뭔진 모르겠지만 이 양념이 바스크의 기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올리브 오일과 파프리카 가루를 왕창 뿌린 문어 요리. 밑에는 감자가 깔려있다. 유럽의 문어요리는 우리나라와 좀 다른데 살짝 데치듯 하여 쫄깃한 식감을 즐기는 우리와는 달리 아주 큰 문어를 팍팍 삶아서 올리브 오일, 레몬즙 등 여러 가지 양념을 한 경우가 많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리스에 살 때 썼던 수필을 보면 문어를 잡아서 불쌍할 정도로 바닥에 여러 번 패대기친 다음에 요리를 한다는 대목이 있는데 유럽에서 문어를 먹을 때마다 그 장면이 왠지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 날의 와인이 정말 맛있었는데, 첫 번째 와인은 Honoro Vera Rioja, 두 번째 와인은 Flor de Morca.

첫 번째 와인을 거의 비워가며 두 번째 와인을 시키는데, 한국어를 잘 못하는 사장님이 급하게 달려와서 손을 막 휘저었다. 첫 번째 와인 남은 걸 급하게 다 마시지 말라는 것이었다. 새 잔을 줄 테니 두 번째 와인과 첫 번째 와인을 비교하며 같이 마셔보라고.

첫 번째 와인을 먹을 때 가격대비 괜찮다고 느꼈는데, 두 번째 와인은 살짝 피노누아 같은 맛이 있으면서도 독특한 개성이 느껴지는 와인이었다. 두 번째 와인을 먼저 마시고 첫 번째 와인을 마셨으면 실망할 뻔했다.

참고를 위해 메뉴판 사진도 올린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저녁 9시, 주택가 한적한 길이라 빛이 가득한 식당에서 나오니 한바탕 비가 지나가고 난 골목길에 우리만 서 있었다. 동화 속에서 빠져나온 것 같기도 하고, 식당에서 가득 먹고 나온 온기로 우리는 뭐가 재밌는지 길에서도 한참을 깔깔거렸다. 엄마가 해주는 집밥 같은 스페인 식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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