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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ating Around

곰탕 미슐랭이 궁금했다

부산 미슐랭 식당 ‘소공간’

by Art Around


항상 여기저기 다니며 로컬 맛집도 가고 미슐랭 레스토랑도 가지만 의외로 한국에서 미슐랭 레스토랑을 간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외국에서 한국으로 손님이 오시는 경우엔 여러 로컬 맛집들 중에서도 선택지가 많고, 외국이나 출장을 갔을 때 일부러 맛집을 검색해서 가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이제 부산에도 미슐랭 레스토랑이 몇 개나 있는데 대부분 일식이나 양식인 가운데 한식 미슐랭이 있어서 가보게 되었다.


사실 '소공간'은 생긴 지 좀 되었고, 생긴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여기서 한참 모임도 많았었는데 이상하게 그때마다 빠지게 되어 나는 이제야 가보게 됐다. 갔다 온 사람들의 후기는 평범하다는 이야기가 많았으나 사실 대부분 평생 먹고 산 한식에는 전문가라 할 수 있으니 평가가 좀 박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기대하며 갔다.


'소공간'은 곰탕을 메인으로 하는 집이다. 사실 곰탕이라는 메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곰탕을 좋아하지 않는 가운데 서울의 하동관 곰탕을 너무너무 좋아하고 만족하는 나로서는 미슐랭 별을 받은 곰탕은 메뉴 구성이 어떻게 되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다.


메뉴는 이와 같다.

1. 샐러드와 수프

2. 생선 요리

3. 고기 요리

4. 곰탕과 식사

5. 첫 번째 디저트

6. 두 번째 디저트와 차


첫 번째 코스인 샐러드와 수프. 샐러드는 딸기가 들어간 소스였고 수프는 낙동강 하구 쪽에서 많이 잡히는 갈미 조개와 아스파라거스 등이 들어간 수프였다. 수프 위에는 치즈 거품과 달래 뿌리 튀김이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수프가 맛있었다. 갈미 조개가 신선하고 튀긴 달래 뿌리가 독특하면서도 향이 있어 좋았다. 샐러드에서는 큰 감흥이 없었는데 딸기가 들어간 소스가 좀 달다고 느껴서인 것 같다.

첫 번째 코스만 해도 무난하네,라는 느낌이었는데 두 번째로 나온 달고기. 생선 자체가 아주 맛있었고 두릅이 들어간 소스와의 조화가 좋았다.

세 번째 코스인 스테이크. 역시 고기 질이 좋았고 곁들여 나온 야채도 좋았지만 마늘맛이 살짝 들어간 감자 퓌레가 딱 맞다고 느껴졌다.

곰탕은 사태와 양지, 사골을 넣고 48시간을 고았다고 하는데 차이가 느껴질 만큼 진하고 안에 들어간 고기도 부드럽게 맛있었다. 곰탕은 사실 한국의 가정집이라면 겨울 내내 불에서 내려올 일이 없는 메뉴라 집집마다 자신 없어하는 집이 없을 텐데, 확실히 깊고 순수한 맛이 있어서 일반적인 곰탕과는 차이가 있었다. 모든 반찬에 간이 적당하고 맛있었지만 왼쪽 위에 있는 토하젓이 섬세했고, 사진에 잘 보이진 않지만 부산 지역에서 주로 먹는 제피 장아찌가 오랜만인데 역시 요리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곰탕이 나오기 전까지는 코스가 한 가지에 곰탕이라 비교적 준비가 간단하겠다 싶었으나 직접 만든 반찬 한 가지 한 가지를 먹어보니 정말 손이 많이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생각은 디저트를 먹으며 더 깊어졌다.

역시 직접 만든 아이스크림. 비트와 복분자를 넣고 만든 아이스크림인데 옆에 크럼블은 제피를 넣어 만든 것이다. 색 때문에 비트를 넣은 것 같은데 색은 깔끔하게 뽑으면서도 비트 특유의 향은 느껴지지 않았고 잡스러운 맛이 없는 깔끔한 복분자의 맛에 제피가 주는 악센트가 놀라웠다!

찹쌀 유과와 금귤 정과, 깨강정과 직접 내린 더치커피. 예전에는 금귤을 참 흔하게 먹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보기가 힘든 것 같다. 여기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더치커피인데, 직접 내렸다고 하길래 처음에는 요즘 커피 맛있는 집이 흔한데 굳이 커피까지…?라고 생각했으나 먹어보니 더치커피 답지 않은 묵직함과 진한 풍미가 있어서 놀라웠다. 차는 커피, 녹차, 단팥차 중에 고를 수 있었는데 커피가 이렇게 맛있다니 다른 두 가지 차도 궁금하지만 다음에 오면 고민하다 또 커피를 시킬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나는 더치커피에서 공통적으로 나는 특유의 향을 좀 싫어하는데 그 향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신기했다.


조금 흔들렸지만 오늘의 메뉴판.

전반적으로 재료 자체가 아주 신선하고 좋다고 느껴졌고 향의 밸런스가 센스 있다고 느껴졌던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양도 많지도 적지도 않은 딱 좋은 양.


외국인 손님이 왔을 때 모시고 갈 것인가…? 생각해 보면 그 부분은 잘 모르겠다. 한식이라고 하기엔 재해석된 부분이 많아서 외국인이라면 역시 좀 더 정석의 한식 요리에 데리고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하지만 오히려 한식을 잘 아는 한국 사람, 특히 제피나 달고기에 두릅 같은 부산적인 향의 악센트가 있어서 타지에서 오는 사람들과 함께 가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아니면, 가끔 기분 전환 하고 싶은 날 친한 친구와 다시 가고 싶을 것 같다.


조금 평범하게 시작해서 뒤로 갈수록 점점 더 맛있고 만족스러웠던 식사. 전혀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입을 가진 나의 미슐랭 식당 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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