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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일 암 라인] 비트라 캠퍼스_2

유럽 최초의 건물들

by Art Around

앞에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펠바움 회장은 건축에 대한 특별한 심미안이 있었던 듯합니다. 비트라 캠퍼스에 있는 많은 건물들은 지금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유럽 첫 번째 프로젝트였거나, 아니면 건축가 본인의 나라 밖의 첫 번째 프로젝트였습니다.


일본 건축가 그룹 SANAA의 건물은 공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비트라 하우스와 비트라 디저인 뮤지엄을 제외하고는 비트라 캠퍼스를 개인적으로 구경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데, 대부분의 건물들이 실제로 비트라의 사업에 실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도 이 건물은 제품을 포장, 출고하는 곳이라 가이드 투어시 방문하더라도 입구에 표시해 놓은 구역 이상을 들어갈 수 없으며 내부의 사진을 찍는 것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 건물은 SANAA의 첫 번째 유럽 프로젝트이며, 비트라 캠퍼스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건물입니다. 이 건물을 지을 때 공장으로 인해 주변 경관이 망가질 것을 걱정한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주변 풍경과 어우러지는 건물을 지으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건물은 일정 두께 이상의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패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투명하지만 일정 두께가 넘어가며 불투명성을 띄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건물은 흰색이라기보다는 날씨에 따라 흰색에서부터 회색에 이르는 다양한 색의 변화를 보여주며 주변에 동화됩니다.

SANAA는 세지마 카즈요와 니시자와 류에, 두 명의 건축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나오시마의 미야노우라항 선착장, 테시마의 테시마 미술관(니시자와 류에), 가루이자와의 센쥬 히로시 미술관(니시자와 류에), 스위스 로잔에 위치한 롤렉스 러닝 센터 등의 대표작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나 로잔의 롤렉스 러닝 센터는 SANAA의 가변적이며 자유로운 공간 흐름을 보여주는 멋진 건축물입니다.



크고 작은 회의실로 구성된 안도 타다오의 건물 역시 안도 타다오의 첫 번째 유럽 프로젝트입니다. 일부러 돌아가는 복도와 섬세한 노출 콘크리트 등 안도 타다오의 특징을 잘 느낄 수 있는 건물입니다.

보통 비트라 캠퍼스 가이드 투어를 신청하게 되면 이 건물을 제일 마지막으로 방문하게 되는데, 그늘이 없는 캠퍼스 특성상 계절 상관없이 항상 내리쬐는 햇빛에 시달린 이후에 이 건물에 앉아서 더위를 식히게 됩니다. 이 건물의 1층 회의실에 앉으면 창 밖으로 지나가는 자동차가 딱 눈높이에서 건물의 담장 위를 달리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데 이것도 건축가에 의해 계산된 것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정말일까요?

이 건물 입구의 노출 콘크리트 담장에는 나뭇잎이 찍힌 자국이 있습니다. 건물을 지을 때 주변에 일부러 일본 벚꽃 나무들을 심었다고 하는데요, 콘크리트를 양성할 때 붙였던 합판 사이로 나뭇잎이 들어가 찍히게 된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당시 이 부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이 또한 안도 타다오 콘크리트의 섬세함을 보여주는 증명이라 생각하고 이대로 두기로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보면 나뭇잎의 잎맥들이 하나하나 다 살아있을 정도로 섬세하게 찍힌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치 콘크리트 가루가 박력분 밀가루라도 되는 것처럼요.


그리고 자하 하디드의 소방서가 있습니다. 화재에 민감한 가구 공장의 특성상 펠바움 회장은 직접 소방서를 운영하기로 했고 자하 하디드에게 설계를 의뢰하게 되었습니다. 이란 출신의 여자 건축가인 자하 하디드에게 이 건물은 유럽 첫 번째 프로젝트가 아니라 생에 첫 번째 프로젝트였습니다. 동대문 DDP에서도 볼 수 있듯 기하학적인 유희를 즐기는 자하 하디드는 이 건물을 마치 '배'처럼 설계했습니다. 화재를 예방하는 미신적인 의미를 담아 물 위에 떠 있는 '배'의 형태로 설계를 했고 실제로 마치 뱃속에 있는 것처럼 흔들리는 느낌을 주기 위해 건물 내부의 많은 구조들이 사선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너무 어지러워 오래 앉아 있기 힘들 정도이죠.

자체 소방대로는 초기 진화 이외에 실질적인 진화 작업을 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비트라의 자체 소방대는 곧 해산되었고 건물은 현재 각종 전시나 이벤트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으로 사용되고 있는 프랭크 게리의 유럽 첫 번째 프로젝트, 자동차 전시장으로 사용되던 리처드 벅민스터 풀러의 천막, 장 푸르베의 주유소 등 실제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지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건물들이 캠퍼스 곳곳에 놓여 있습니다.

벅민스터 풀러의 천막
천막 내부
장 푸르베의 주유소, 뒤로는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이 보입니다.

비트라 캠퍼스의 가이드 투어는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습니다.


https://www.vitra.com/en-un/campus/guided-tours-workshops


캠퍼스를 걷는 동안은 그늘에서 쉴만한 곳이 없고 중간에 이탈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흐린 날 방문을 추천하지만 예약할 때 날씨를 미리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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