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는 여름이 좋을까요, 겨울이 좋을까요?
스위스를 가자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럽니다. 스위스는 역시 여름에 가야지!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이러죠. 스위스는 역시 겨울에 가야 한다고.
알프스를 끼고 있는 산악지대의 스위스는 4계절이 모두 아름답습니다. 여름도 지나치게 덥지 않을뿐더러 그야말로 신록이 우거진 자연을 만끽할 수 있고 눈이 무릎을 넘어 쌓이는 겨울은 역시 말할 것도 없죠. 이탈리아에서 학교 다닐 때 같은 반에 있던 스위스 친구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름 방학 때는 산 위에 있는 샬레에 보름에서 한 달씩 머물며 양에게 풀을 먹이는 목동아르바이트를 하고 겨울에는 아주 꼬마 아기 때부터 스키를 타고 학교에 갔다고요. 그야말로 동화 같은 이야기네요.
저에게 물으신다면, 많이 고민되지만 저는 역시 겨울을 선택하게 되네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던 시간에 눈 덮인 알프스를 운전해서 넘어가던 그때 느꼈던 감정이 잊히지 않아서인 것 같습니다.
스위스에는 아트페어로 유명한 바젤을 중심으로 유명한 국공립, 사립 미술관들이 많이 모여있지만 산속 마을에 작은 미술관들도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생모리츠에 세간티니 미술관입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코모 호수를 왼쪽으로 끼고 올라가며 국경을 넘고 약 3시간쯤 운전하다 점점 높은 산들이 양옆으로 감싸는 것 같으면 생모리츠입니다. 호숫가에 위치한 생모리츠 마을도 아주 작고 마치 중세시대 돌을 쌓아 만든 것 같은 세간티니 미술관도 아주 작습니다. 미술관에서 일하시는 분은 마을 주민인 듯 영어도 서툴고 문 닫을 시간 한 시간 정도를 남기고 관람객이 들어가자 귀찮은 표시를 팍팍 냈습니다. 손님이 없으면 조금 일찍 집에 가서 따뜻한 거실 소파에서 코코아 마시는 상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괜히 좀 미안하기도 했지만 양보할 수는 없었어요. 이 미술관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이 얼마인데요. 작은 미술관이지만 그림 한 점 한 점을 꼼꼼히 보고, 아트샵에서 사고 싶는 프린트까지 사고 미술관 직원과 함께 문을 잠그며 나왔답니다.
미술관이 지어진 것은 1908년, 20세기인데도 미술관은 단단한 중세의 성 같은 모습으로 지어졌습니다. 미술관 정면의 눈 덮인 산과 사진에선 보이지 않지만 바로 앞의 호수를 보니, 이런 투박하고 클래식한 건물이 아니면 어떤 건물이 이곳에 어울릴까 싶기도 합니다.
미술관에 들어가면 작은 카페도 있어요. 비록 저희는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은 없었지만요. 카페라기보단 휴게실에 가까운 분위기이긴 하지만 카페 유리창에 창 밖으로 보이는 산맥을 따라 선을 그려놓은 것이 귀엽습니다.
세간티니는 아주 불운한 화가였습니다. 아니, 불운한 ‘사람’이었죠. 세간티니는 1899년에 사망했지만 그가 사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08년에 이런 멋진 개인미술관이 시에 의해 지어진 것을 보면 화가로서의 인생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세간티니는 어른의 보살핌을 거의 받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버지는 행상을 위해 세간티니가 태어나자마자 집을 떠나 6, 7년간 아주 가끔 집에 올뿐이었습니다. 세간티니 위에는 형이 하나 있었는데 그 형은 세간티니가 태어나던 해에 죽었습니다. 어머니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세간티니는 그런 어머니와 단 둘이 남겨졌죠. 세간티니가 6살이 되던 해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잠시 돌아와 세간티니를 역시 아직 어린 이복 누나에게 맡기고 다시 길을 떠난 아버지 역시 그 일 년 뒤에 집에 돌아오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죠. 어린 나이에 먹고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누나는 세간티니를 거의 방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오스트리아령 알프스의 아르코 지역에서 살았던 이들은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이탈리아 밀라노로 이사했는데, 이 과정에서 누나 이렌느는 오스트리아 국적을 포기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탈리아 국적을 신청하는 것을 깜박해 이 둘은 이후 남은 인생 내내 무국적자로 살게 되었죠. 스위스에 살던 시절 스위스 정부가 여러 차례 세간티니에게 스위스 국적을 주겠다고 했으나 세간티니는 본인의 마음의 고향은 이탈리아라며 거절했다고 합니다. 결국 세간티니는 스위스 생모리츠 근처에서 살며 작업하다 무국적자로 죽었고, 이후 스위스 정부가 그를 위해 이탈리아 국적을 취득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