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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야스] 가우디의 엘카프리초

미치광이의 집 혹은 해바라기 집

by Art Around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


아르누보의 대표적인 예술가 가우디가 한 말입니다. 가우디를 건축가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우디는 근현대적인 건축의 원칙과 기법보다는 건물 하나하나를 본인의 작품으로 생각하며 손으로 조각하듯(실제로 조각하기도 했던) 지은 건축가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건축가보다는 어쩌면 예술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아르누보의 특성상 클림트 등 아르누보의 많은 예술가들이 단순한 순수 미술의 범주에 머무르기보다는 예술을 적극적으로 실생활에 도입하고자 브뤼셀의 슈토클레 하우스처럼 가구에서 바닥, 벽, 천장, 조명에서부터 전체적인 집까지 같이 완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이 시기에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보자면 아직까지 건축가와 순수 예술가 등의 구분이 모호하고 근대적인 의미의 '장인'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었던 마지막 시대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네요.


아르누보는 유럽에서 한참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시기, 지나친 산업화, 기계화로 인해 인간의 생활에서 예술성이 사라지고 삭막해졌다고 생각해 다시 한번 모든 것을 손으로 만드는 장인의 손길, 그리고 기계에서 비롯된 직선의 딱딱한 물건들이 아닌 원래의 자연에서 오는 부드러운 곡선을 생활 속에 도입하고자 했던 예술 사조 중에 하나였고, 이것은 단순히 제한적인 한, 두 지역이 아닌 전 유럽적으로 당시에 유행을 했습니다. 따라서 독일에서는 유겐트슈틸(Jugendstil, 젊은 스타일이라는 뜻), 프랑스에서는 기마르 양식(Style Guimard, 아르누보의 건축가 헥토르 기마르의 이름에서 따옴), 이탈리아에서는 리버티 스타일(Stile Liberty, 영국 런던의 리버티 백화점에서 따온 이름) 등 유럽 각지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지역성을 반영한 이름을 가지고 발전한 특이한 예술 양식입니다. 그만큼 대중적이었고 순수 예술보다는 디자인적인 요소가 더 많았다고도 볼 수 있는데, 따라서 벨기에에서는 장어 스타일(Eel Style), 국수 스타일(Noodle Style) 등의 이름으로 약간의 멸시를 담아 부르기도 했습니다.


스페인의 문화 중심지인 카탈루냐 출신인 가우디는 카탈루냐와 바르셀로나를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겼습니다. 몬세라트의 수도원처럼 뛰어난 자연과 역사적, 종교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당시 스페인의 산업화는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먼저 시작되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바르셀로나가 활기를 띠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이 바르셀로나에 있는데 왜 세상의 다른 곳을 여행해야 하냐?'라고 가우디는 이야기했는데, 어쩌면 그 말이 틀리지 않을 정도로 경제적인 성장을 딛고 이 시기의 바르셀로나는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기였습니다. 신흥 부자들은 저마다 유명한 예술가와 건축가를 고용하여 가문의 이름을 딴 저택을 짓고 싶어 했고 그래서 가우디뿐만 아니라 많은 건축가들이 당시 바르셀로나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가우디의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바르셀로나에 있는 이유입니다.


자연에서 온 식물의 곡선을 좋아한 아르누보의 예술가답게 저택 안에는 환한 빛으로 가득한 온실이 있습니다.

가우디가 바르셀로나 밖에 남긴 작품은 많지 않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코미야스(Comillas)의 엘카프리초를 포함하여 세 작품 정도입니다.


엘카프리초(El Capricho)의 capricho 영어의 caprice에 해당하며 '변덕, 제멋대로의 행동'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엘카프리초는 변덕쟁이, 미치광이의 집이라는 정도의 뜻을 가지고 있겠네요. 집의 외관은 스페인 북부 바닷가 코미야스의 쨍한 하늘을 상징하듯 하나하나 손으로 빚어 구운 해바라기 타일들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은 엘카프리초를 해바라기의 집이라고도 부른다고 하네요.


방마다 창문의 모양이 조금씩 다른데, 이 창문은 위로 열리는 창문입니다.
1층의 가장 끝방인 이 곳은 욕실이었다고 합니다. 욕조가 있었던 곳을 쉽게 짐작하실 수 있겠죠?
2층은 일반적인 높이의 공간과 함께 약간의 계단을 올라가 있는 다락방 같은 꽤 넓은 마루로 이루어져있습니다.
2층 창문
2층 거실을 통해 밖으로 나가서 본 풍경입니다. 화려한 빨강이 스페인 북부의 햇살과 잘 어울립니다.
당시 가우디가 디자인한 가구들입니다. 실제 앉아볼 수가 있는데 꽤 편안해요! 두 개의 의자가 붙어있는 소파같은 저 의자가 가장 인기가 많았습니다.
예전에는 이 탑에도 올라가 볼 수가 있었다고 하네요. 지금은 잠겨있습니다. 왠지 바르셀로나에 있는 카사 바트요와 좀 비슷하지 않나요?
저택의 주변으로는 수국이 화려하게 피어있습니다. 붉은 색과 푸른 색의 수국이 적절히 섞여 있어요.
하나하나가 다 다른 해바라기 타일

이 집은 가우디의 최대 후원자였던 구엘의 장인이자 코미야스의 후작이었던 안토니오 로페즈의 사촌인 막시모 디아스라는 사람의 의뢰로 지어졌습니다. 가우디의 초기 작품 중 하나로 가우디의 특징인 곡선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화려한 색감과 하나하나 모양이 다 다른 해바라기 타일, 방마다 다른 문과 창문, 바닥과 천장의 타일 장식,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면 가우디가 직접 디자인한 가구까지 가우디의 특징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작품입니다.


코미야스로 가는 길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점이 되는 소도시들과 유럽 3대 은행 중 하나인 산탄데르(Santander) 은행이 탄생한 산탄데르시가 있으니 같이 방문하신다면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과 함께 스페인 북부를 방문할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느끼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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