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용 현상', 한국 현대미술의 최전선에 선 개척자
80세 이건용 작가는 2022년 세계 5대 갤러리 중 하나인 페이스 갤러리(Pace Gallery)와 글로벌 전속계약을 했습니다.
오늘 [MEET] 시리즈에서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며, '언젠가는 사람들이 알아주리라'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굳건히 나아간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볼까요?
이건용(b.1942-)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후, 1969년 ST(Space and Time; 공간과 시간)의 결성과 AG 한국아방가르드협회의 주요 구성원으로 참여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최전선에서 개념미술, 행위미술, 설치작업 등 신선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였습니다.
이건용은 캔버스 위에 드러나는 회화의 결과물보다, 선들이 모여 공간과 형태를 이루어가게 하는 행위의 의미에 주목하며 고민한 끝에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갔습니다.
예술은 무엇이고, 예술품은 무엇인가를 물은 작품이었다.
1973년, 작가는 파리 비엔날레에서 경부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발견한 뿌리째 뽑힌 큰 나무의 밑동과 흙을 전시장에 통째로 옮겨놓은 높이 2.5m에 달하는 설치작품 <신체항>을 선보였습니다. 비록, 비행기 표 살 돈이 없어 유럽에 입양 가는 아이 2명을 데려가며 파리에 갔던 그이지만, 자신의 예술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만큼은 있었습니다.
40여 년 간 전위적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작업을 해온 이건용은 그림을 마주하고 그리는 전통적인 회화 방식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동시에 신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며, 자신의 몸을 회화 매체로 활용한 작업을 하였습니다.
화가는 모름지기 자기 앞에 현전해 있는 평면에 무언가를 그리지만, 저는 화면을 제 앞에다 놓고 제 신체가 허용하는 것만큼만, 화면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선을 그리는 겁니다. 그것은 제가 평면을 보고 그 위에 무언가를 의식이 지시하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제 팔이 움직여서 그어진 선을 통해서, 내 신체가 평면을 지각해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이건용이 1976년 처음 발표한 '신체드로잉(Bodyscape)' 시리즈에서 그는 신체를 제한한 상황에서 간단한 선 긋기 동작을 수행하며 화면에 흔적을 남깁니다.
눈으로 보지 않고 몸이 그린 것, 내 몸 움직임의 흔적이다. 내 키와 팔 길이 등 신체의 제약이 자연스럽게 만나 이리저리 틀을 벗어나기도 하고 평균치도 있고 중첩된 선들이 작품이 된 거다.
그는 화면을 마주하고 그림을 그리는 대신, 화면의 뒤에서 앞으로 손을 뻗어 팔이 닿는 곳까지 물감을 칠하는 <신체드로잉(Bodyscape) 76-1>,
화면을 등지고 머리부터 다리까지 양팔이 갈 수 있는 만큼 선을 긋는 <신체드로잉(Bodyscape) 76-2>,
화면을 옆에 두고 팔을 앞뒤로 둥글게 반원을 그려내는 <신체드로잉 76-3> 등 여러 제한조건 속에서 신체가 남긴 흔적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죽으면 몸은 썩고 흙으로 돌아가지만 우리는 몸의 차원에서 산다. 예를 들어, 신이 그저 저 위에 존재하며 인간에게 메시지만 보냈다면 아무 의미 없었을 거다. 인간의 몸을 가지고 왔고 몸을 십자가에 박히며 고통을 당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신을 믿지 않나. 우리가 영(靈)의 세계에서만 놀고 있으면 이 세상 문화나 경험이 아니다. 몸을 가지고 예술을 만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와 같은 독창적인 회화 제작 방식에 대해 그는 "내가 신체를 쓰는 건 대중과 단절된 미술을 극복하는 방법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건용은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오늘날에도 꾸준히 작업 방식을 진화 및 발전시키며 다양한 회화 작품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이건용 평생의 화두는 '예술의 쓸모'였습니다. 의사가 되길 원하시며, '쓸모 있는 사람'이 되라는 어머니의 말씀 덕분이었습니다.
현대인들은 모두 자기 방에 갇혀 있는데, 난 예술은 서로 교감을 할 수 있게 매개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예술은 쓸모없어 보이는 일을 극단까지 밀고 나가며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의사가 되지 않았지만, 후회 없다.
이건용은 올해 2023년 9월부터 2024년 1월까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에서 열리는 한국 실험미술과 그 작가들을 해외에 최초로 알리는 전시 <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에 참여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서울과 뉴욕에 이어 LA 해머 뮤지엄(Hammer Museum)을 순회할 예정입니다.
한편, 2022년 3월 23일 K옥션 경매에서 120호 크기의 <The Method of Drawing 76-1 2015>가 2억 9,900만 원에 거래되며, 작가 경매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은 이건용은 부산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4A 아시아 현대미술센터(4A Centre for Contemporary Asian Art), 갤러리 현대, 페이스 갤러리, 리안 갤러리, 더 페이지 갤러리 등 국내외 주요 미술기관에서 다양한 전시를 통해 꾸준히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영국 테이트(Tate), 미국 라초프스키 컬렉션(Rachofsky Collection)과 국립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부산시립미술관 등 국내외 유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현재 그는 갤러리 현대와 페이스 갤러리의 전속 작가로 활동 중입니다.
'이건용 현상'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 작가는 늘 '울타리 밖'에서 머물고, 생각하며, 바라본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그동안 기존 울타리 안에 있지 않았다. 항상 바깥에 머물고, 바깥에서 생각했다. 그래서 새로운 것들을 할 수 있었다. 미술도 그렇지만, 해결책을 찾으려면 밖에서 봐야 한다. 한국 정치도 국회의원들이 국회 밖에서 정치판을 봤으면 좋겠다.
이건용의 말대로 80세가 아닌 8살인 듯, 여전히 아이디어를 과감히 펼치며 열정을 다해 새로운 작업에 임하고 있는 이건용은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작가입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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