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술감독은 어떤 일을 할까? (2)

디자인 과정에 대해서

1. 아무거나 보기

말 그대로 아무거나 본다. 핀터레스트를 켜놓고 이런저런 이미지를 모으기도 하며, 전시회를 가거나 새로 생겼다는 핫플레이스에 가보기도 한다. 넷플릭스 top10에 든 드라마는 요즘 뭐가 잘 나가는지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본다. 연출자가 언급한 작품을 보거나, 좀 더 주제에 맞는 자료를 찾아보기도 한다. 스포츠 소재 드라마를 맡게 되었다면, 스포츠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관련자료를 찾아본다. 주연 배우의 이전 작품을 보며, 배우의 연기톤이나 외모가 어떤 느낌을 주는지, 어떤 의상이나 컬러가 어울리는지를 보기도 한다. 자료 조사하는 척 은근슬쩍 농땡이 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초반에 닥치는 대로 뭔가를 보는 시간은 나 말고 다른 감독들도 갖는 시간인 걸 보면,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갑자기 급한 프로그램에 투입되거나, 여러 프로그램을 동시에 진행하는 경우 이런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게 아쉽다.

2. 리서치

앞선 과정이 브레인스토밍에 가까운 리서치 준비단계였다면, 좀 더 작품에 맞는 자료, 각 공간별 컨셉이나 실질적인 디자인을 하는데 참고할 수 있는 자료를 찾는다.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나에게는 새로운 극본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주제와 공간이 나오기에, 배우고 찾아야할 자료가 많다. 물론 예전에 그려봤던 공간이나 평이한 공간도 새 작품에서는 새롭게 보여주는 것이 좋으니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한 해, 두 해 정도의 시간은 별로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씩 인테리어 트렌드나 건축자재들이 바뀌고 개선된다. 이에 따라 디자인 리서치를 하면서, 새로 나온 자재나 유행하는 컬러 등에 대해서도 조사한다.

특정시대나 직업 등에 관해 전문적인 고증이 필요한 경우, 자료를 찾은 일은 '이미지'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책을 보거나 전문가와의 인터뷰를 진행할 수도 있다.

3. 세트 디자인과 미술회의

이 시기의 일은 디자인하고, 회의를 하고, 또 디자인하고, 또 회의를 하는 것에 가깝다. 나의 경우 평균적으로 1-2주에 한 번씩은 미술회의를 했다.

처음에는 일종의 브레인스토밍에 가까운, 공간별 컨셉 이미지를 가지고 회의를 한다. 두 번째 회의에는 선별된 이미지와 함께, 러프한 세트 평면도를 준비한다. 이때의 평면도는 한정된 스튜디오 안에서 각 공간을 어느 정도 구성과 규모로 배치할지에 관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연출자와 촬영감독의 의견을 들으면서 큰 구조를 결정한다. 세 번째 회의에는 좀 더 구체화된 도면과 3D시안을 준비한다. 나 또한 평면도를 3D로 만들다 보면, 생각한 구조가 바뀌기도 해서 이 단계에서 공간의 사이즈와 디테일이 많이 결정된다. 여기서 수정&보완하며 디자인을 발전시킨 다음, 네 번째 회의에서는 거의 최종에 가까운 시안을 가지고 회의를 한다.

나는 이 정도로 진행하는데, 경우에 따라 단계가 더 단축되거나 길어지기도 한다. 촬영일정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연출자와 디자인 협의가 완료되면, 곧바로 세트제작을 시작한다.

4. 세트 공사 감리

주로 목수로 구성된 '세트팀'은 프리 프로덕션 기간 동인 드라마의 고정세트를 제작한다. 세트제작에 관여하는 인원은 적게는 십 수명~수십 명 정도이다. 드라마 세트가 실제 건축인테리어 환경에 가까워지고 다양한 건축자재가 사용되는 추세이기에, 목수 베이스의 세트업체 이외에도 다양한 외부업체가 세트 제작에 참여한다.

미술감독은 이러한 세트제작공정을 계획하고, 각 과정들이 디자인한 대로 설치되는지 감리한다.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할 때,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현장을 감리하는 것과 비슷하다. 제작을 진행하며 발생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디자인을 수정하거나 보완하기도 한다.

위의 일들은 대체로 순차적으로 적은 것이지만, 여러 가지 일들이 조금씩 겹쳐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큰 내용이 협의되고 세트팀이 고정세트 공사에 착수할 무렵, 야외촬영이 시작된다.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