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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K Sep 03. 2023

드라마 미술감독은 어떤 일을 할까? (1)

미술팀이 프리 프로덕션에 하는 일

드라마 제작과정은 크게 프리 프로덕션 - 프로덕션 - 포스트프로덕션으로 나뉜다. '프로덕션(production)'은 드라마 촬영이고, 촬영기간 앞 뒤로 '프리 프로덕션(pre-prdoduction)'과 '포스트 프로덕션(post-production)'이 있다. 미술팀은 주로 '프리 프로덕션'과 '프로덕션' 과정에 참여하기에, 이 시기에 하는 일들에 대해서 써보려 한다.


프리 프로덕션은 드라마 촬영의 사전 준비 단계이다. 작품의 최초 스탭인 극본가와 연출감독, 제작 PD가 제일 먼저 기획에 착수한다. 초반부 대본이나 주요 캐스팅이 완료되는 시점에 키스탭을 꾸리는데, 이 때 미술감독도 합류한다. 나는 평균적으로 촬영 2~2개월 반 전에 프리 프로덕션에 참여했다. 미술팀은 프리 프로덕션 과정에서 가장 할 일이 많은 팀 중에 하나다.


1. 대본 분석

가장 먼저 하는 일이자, 가장 중요한 일은 대본분석이다. 프리 기간에 평균적으로 대본 1-4부 정도(더 많은 경우도 있다.)를 받아보곤 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게 읽는다. 처음 극을 접하는 시청자처럼, 뒷 내용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하며 대본을 정주행 한다. 두 번째부터는 드라마에 어떤 공간들이 나오는지 분류하면서 본다. 주인공에게 어떤 공간이 필요하고 어떤 컨셉인지, 단발성이지만 임팩트가 있어야 하는 공간은 어떤 것인지 등이다. 때로 대본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나 공간이 있는데, 이런 부분은 연출자에게 확인하면서 구체화시킨다.


장소별 정리가 되면, 어떤 공간을 로케이션(야외촬영)에서 해결하고, 어떤 부분을 세트로 지을지 정해야 한다. 길어야 2-3개월 주어지는 기간 동안 공사를 마무리해야 하기에, 이 부분은 연출부와 협의를 통해 빠르게 정리하는 게 좋다. 예를 들면 '주인공이 일하는 회사 건물의 외부나 로비는 실제 회사를 섭외해서 찍고, 사무실은 100평 규모의 세트로 짓겠다'는 식의 결정이다.


세트구성이 결정되면, 디자인을 하기 위해 대본을 더 자세히 살핀다.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각 공간이 처음 소개되는 씬이다. 시청자에게 공간에 대한 첫인상을 주는 씬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누가 누구와 대화하는지, 배우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바깥쪽에서 출입하는 경우는 없는지, 낮씬과 밤씬은 어느 정도 비중인지 등을 고려한다. 이런 식으로 대본을 보게 되면, 어떤 부분은 몇 번 읽었는지 모를 정도로 많이 읽게 된다.


영화와 드라마는 근본적으로 관람환경과 러닝타임에 큰 차이가 있고, 이는 극본에도 드러난다. 영화관람객은 돈을 내고 영화를 골라서 자리에 앉기에, 웬만해서는 끝까지 본다. 드라마의 경우, TV든 OTT든 간에, 채널을 돌리거나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다른 선택지로 바꾸는 것이 너무나 쉽다. 시청자가 드라마를 보게 하기 위해 초반에 주목을 끄는 것이 중요하기에, 대부분의 극본은 1-4부에서 빠른 속도로 사건을 전개하고, 시각적으로도 스펙터클한 장면을 배치하려고 한다. 또한 대부분 2회씩 끊어 방송하기에, 시청자가 일주일 동안 다음 편을 기다리도록 짝수 회차에 신경을 많이 쓰고, 새로운 떡밥을 뿌리며 마무리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유로 연출자가 극 전체에서는 1-4부, 각 대본에서는 오프닝과 엔딩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기에, 이 부분에 미술 세팅이 있는 경우 더 신경 써야 한다.


2. 아트 캘린더 만들기

미술감독은 미술팀의 프로젝트 매니저 역할도 해야 하기에, 프로젝트를 어떻게 운영할지에 대한 스케줄을 관리해야 한다. 나의 경우, 대본을 보고 난 뒤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내가 생각하는 일정을 캘린더에 적는 일이다. 정해진 촬영 일정에 맞추기 위해, 세트 공사는 언제부터 시작하고 완료해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서 나는 언제까지 어느 정도의 디자인을 완료해야 하는지, 야외촬영이나 소품제작에 필요한 로고 디자인은 언제까지 해야 하며, 연출부와 미술회의를 어느 정도 간격으로 진행할지 등이다. '아트 캘린더'라고 부르는 이것은 완벽히 계획대로 되지 않고 수시로 바뀌곤 하지만, 그래도 그 순서는 꽤 들어맞는다.


3. 미술팀 구성하기

나는 방송국에 소속되어 있다 보니, 미술팀은 후배디자이너를 배정받아 자연스럽게 구성되는 편이다. 프리랜서 미술감독으로 일하는 경우, 미술팀을 구성하는 것도 미술감독의 몫이다.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는 미술감독 1명, 디자이너 2명, 전담세트팀장 1명 정도로 인원이 구성되고, 더 적거나 더 많은 경우도 있다. 영화나 외부 미술팀의 경우, 미술팀이 10명이 넘는 경우도 보았는데, 방송국은 적은 인원이 작품을 진행하는 편이다. 그래서 많은 업무량에 치이기도 하고, 상대적으로 촬영현장을 많이 팔로우 못하는 등 아쉬움이 있다. (외부 제작환경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정확한 비교는 어렵다.)


4. 장소 섭외 (Location Scout) 따라다니고 조언하기

로케이션(location)은 세트가 아닌 실제 장소들(주로 야외)에서 촬영하는 것을 말한다. 드라마를 위해 장소를 섭외하는 '섭외팀'이 있으며, 장소 섭외를 위해 가는 답사를 '헌팅'이라고 한다. 초기헌팅일수록 연출, 제작부, 촬영, 조명, 미술, 소품팀 등 키스탭 위주로 움직인다. 연출자가 최종결정을 하긴 하지만, 미술감독 또한 로케이션 장소를 선택하는 데 많은 조언을 하는 편이다. 뭐가 되었든 로케이션이 정해지면, 촬영에 적합하게끔 공간을 탈바꿈시키는 것도 미술팀의 일이다.


이것이 내가 프리 프로덕션 초기에 하는 일들이다.  대본분석을 마치고 대략적인 스케줄과 예산, 세트 구성이 결정되면, 디자인을 시작한다. (다음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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