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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K Sep 06. 2023

드라마 미술감독은 어떤 일을 할까? (3)

미술팀이 프로덕션 기간에 하는 일

1. 촬영 초반에 대해서


드라마의 전체 스탭이 구성되면, 마치 상견례를 하듯 전체스탭들이 모이곤 한다. 회의라고 하기엔 본격적으로 일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고, 연출감독이 작품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거나 서로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하는 자리이다. 이 최초의 스탭회의 즈음 카메라 테스트 및 대본 리딩이 진행되고, 다른 팀들도 본격적으로 촬영을 준비한다. 평균적으로 스탭회의 한 달 후쯤, 첫 촬영이 시작된다.


첫 촬영 시점에는 세트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기에, 대부분의 첫 촬영은 야외(로케이션)에서 시작하곤 한다. 준비기간에 대한 고려도 있지만, 초반에는 스탭들이 호흡을 맞추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촬영이 용이한 일상적인 장소들에서 시작하곤 한다. 주인공들이 카페에서 대화를 나눈다던지, 병원이나 경찰서에 드나드는 장면 등이다.


촬영 초반에 내가 신경 쓰는 것은 일종의 '라포(rapport) 형성'이다. 처음 보는 스탭들의 얼굴을 익히고, 전에 만난 적 있는 스탭은 괜스레 더 반갑게 인사도 한다. 처음이 즐거워야 끝도 즐겁달까. 요즘은 방송 콘텐츠 종사자도 탄력적 근로시간으로 법정근로시간을 준수하기에, 프로덕션 기간이 전보다 길어졌다. 16부작 드라마 기준, 최소 6개월 정도는 촬영을 한다.


2-3개월을 프리 프로덕션, 6-7개월을 촬영한다 했을 때, 드라마 한 작품을 하면 한 해가 간다. 일 년 내내 보고, 다음 작품에서 또 볼 수도 있는 스탭들이기에, 결국 이 일을 하는 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랑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야, 다소 험난할 수 있는 촬영 기간을 이겨낼 수 있다.



2. 야외드레싱


아침드라마나 주말연속극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드라마는 야외에서 많은 촬영을 한다. 특히, 여러 가지 사건 사고가 나는 장르물이라던지, 회차별로 새로운 내용을 다루는 옴니버스식 드라마의 경우, 극에 등장하는 장소들이 매 회 달라진다. 이런 경우는 세트보다 야외(실제 장소)에서 촬영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더 리얼한 미장센을 보여준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극본의 내용과 동선, 촬영 허가와 여러 가지 촬영 여건 등을 살피다 보면 완벽하게 의도에 맞는 장소가 드물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시제 촬영을 하기 위해 드라마세트장이나 오래된 장소를 찾았다 해도, 주변에 현대의 물건이 있으면 그것을 철거하거나 가려야 한다. 때론 멀쩡하고 깨끗한 주택을 극 중 내용 때문에 오랜 시간 방치된 집처럼 덩굴로 뒤덮어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로케이션 촬영 시 극에 적합한 미술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미술팀의 일이다. 이를 '야외드레싱'이라 하는데, 세트 제작이나 조경, 사소하게는 기존 로고를 가리는 작업도 포함된다.


야외촬영 기간 동안 가장 귀찮지만 기본적인 야외드레싱 중 하나는 '간판 또는 로고 바꾸기'이다. TV드라마는 각종 심의와 상표권을 지키기 위해, 실제 장소나 상표의 이름을 가리고 촬영한다. 실제 병원에서 촬영하더라도 그 병원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로고를 제작하여 부착한다. 사실 이름만 바꿔 붙이면 뭐든 될 수 있는 공간들도 많다. 관공서처럼 생긴 건물에 경찰서 로고를 붙이면 경찰서가 되고, 소방서 로고를 붙이면 소방서가 되는 식이다. 이런 것을 왜 CG로 안하냐고 하면, 고정된 한 컷트를 작업하는 게 아닌 이상, 직접 만들어서 가리는 게 더 싸기 때문이다.



3. 고정 세트 완공 - 소품, 인테리어 세팅 - 세트 촬영


미술감독은 세트디자인과 세트공사 감리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소품, 인테리어에도 관여한다. 소품회의를 통해 각 공간의 컨셉과 세트디자인을 공유하고, 포인트가 되거나 중요한 소품은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기도 한다. 괜찮은 소품팀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소품 디자이너, 그래픽디자이너, 진행소품 담당자 등 역할별로 구성이 되어있기에, 각 파트에서 가구와 소품, 그래픽 출력물 등을 세트의 전체컨셉과 어울리도록 준비한다.


세트 공사와 소품 세팅이 끝나면, 모두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세트 촬영이 시작된다! 미술팀은 가장 바쁘고 긴장되는 시기이다. 대본에서 몇 줄의 활자로 묘사된 세계를 실제로 만들어낸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면서도 참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협의해도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고, 명확했던 부분도 실제로 보니 생각과 다를 수 있다. 세트에 들어와 흡족해하는 스탭들을 볼 때는 너무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반대로 '이게 아닌데'하는 상황에는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힘들어진다. 그런 상황의 괴로움이 싫기에, 최대한 연출자의 말에서 힌트를 많이 얻고, 3D 모델링이나 세트진행상황을 중간중간 공유하려고 한다.



4. 촬영현장 팔로우 및 모니터링


야외드레싱이든 세트촬영이든 미술 세팅이 제대로 되었는지, 화면에는 어떻게 나오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촬영현장을 팔로우한다. 큰 세팅이 아닌 경우는 세트팀만 현장에 나가는 경우가 많지만, 중요한 씬이거나 미술세팅이 큰 경우는 꼭 현장에 나가 모니터링을 하는 편이다. 사실 카메라가 돌고 나면, (무슨 문제가 없는 한) 촬영 중간에 끼어들어 뭔가를 바꾸거나, 추가로 할 일은 없다. 그렇지만, 아직 배울 게 많은 나의 경우, 현장에 나가면 뭐 한가지씩은 꼭 배워오곤 했다.


소속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미술감독의 경우, 촬영이 무탈하게 중후반에 접어들면 다른 작품도 병행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현장 팔로우를 많이 못하게 되는데,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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