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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K Sep 16. 2023

리서치 (2) - 연출자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

미술뿐만 아니라 드라마 제작의 모든 영역에서 최종 결정권자는 메인 연출자이다. 그런 만큼, 감독은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느라 바쁘지만, 어떻게든 최종보스인 감독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능한 *퍼스트 조감독(감독 바로 아래 조감독으로 연출부에서 실질적으로 많은 일을 담당한다)은 미술 세팅에 관한 협의와 결정을 충분히 할 수 있고, 미술팀과 협의한 내용을 시기적절하게 감독에게 컨펌받는다. 그러나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거나, 감독을 만나고 돌아와 그간 협의한 것을 180도 바꿔야 한다는 비보를 들고 오는 조감독도 있다.


때문에 조감독과 협의하더라도, 반드시 '감독님에게 이러한 부분을 확인하라'던지, 감독님을 촬영 현장에서 마주치는 틈틈이 '이렇게 준비하면 어떻겠느냐'라고 질문을 던지곤 한다. 프리 프로덕션 기간에는 회의를 하면 되지만, 활영현장에서 감독과 얘기하려면 핵심을 말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때로는 물어봤어야 하는 것 몇 가지를 빠뜨리기도 한다.


리서치에 관한 앞의 글에서 '연출자를 통한 리서치' 또한 중요하다고 썼다. 지금도 일을 하고 있기에, 글을 쓰며 ‘나는 지금 연출자에게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고 있나’ 자문하게 된다. 부족한 느낌이다. 좀 더 시기적절하게, 좀 더 좋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덤벙대는 나를 위해서, 경험상 효과가 좋았던 질문들, 물어봤으면 좋았을  질문의 목록을 적어봤다.



1. 다른 작품들에 대해 질문하기. 기존에 제작된 작품에 대해 의견을 나누다 보면 감독의 성향이나 호불호를 쉽게 판단할 수 있다. 비슷한 주제를 가진 다른 작품을 어떻게 보았는지, 참고하는 톤의 작품이 있는지 등을 물어본다. 대부분의 연출자들은 촬영의 톤이나 작품의 분위기에 대해서 참고하는 작품이나 이미지가 있다.


2. 드라마의 공간이 리얼리티와 판타지 사이에서 어느 지점에 위치했으면 좋겠는지? 예를 들어, 경찰서 세트를 만들 때, 현실에 존재하는 것처럼 깔끔한 관공서 건물에 파란색 경찰 로고가 붙은 사무실을 디자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현실보다 더 거칠고 터프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던가, ‘맨해튼에 있을법한 경찰서’를 생각할 수도 있다. 어차피 모든 것은 드라마니까. 어떤 감독은 '리얼리티'를 선호하고, 어떤 감독은 '판타지'를 선호하며, 이 선택은 작품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3. 상상하는 공간의 크기에 대한 질문. 감독의 이전 작품에 나온 적이 있는 공간을 디자인할 때는, 이전 규모가 마음에 들었는지, 작거나 컸으면 좋겠는지를 물어본다. 촬영현장이든 회의실이든 눈앞에 있는 공간을 보여주면서, 이 정도 크기는 어떠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드라마 세트에 '적당한 크기'라는 건 존재하지 않고, 정답도 없다. 같은 'VIP 병실'이라도 어떤 감독은 10평 남짓한 공간을 떠올리고, 어떨 때는 복도와 기타 시설을 포함해 100평은 족히 채울 수도 있다.


4. 특정 에피소드나 씬에서 상징적인 사물을 배치하거나, 강조하고 싶은 색채가 있는지? 미술에 관심이 많은 연출자일수록 사물이 상징하는 바나 색채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다. 그런 감독을 만날수록, 에피소드마다 생각하는 톤이 있는지 물어본다. 예를 들어 감독이 '레드'를 키컬러로 잡았다고 하면, 나는 그 에피소드에 나오는 로고나 세트를 준비할 때, 되물어볼 필요 없이 '레드'를 포인트컬러로 준비하여 보여주곤 한다.


5. 드라마에 나오는 주요 공간들의 콘셉트를 어떻게 달리하면 좋을지에 대한 질문. 한 작품 안에 비슷한 스타일과 규모의 공간이 여럿 나올 수 있다. 가령 주인공들의 집은 각각 어떻게 다르게 갈 것인지? 대본 상 여러  주인공이 비슷한 종류의 집에 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펜트하우스>의 주인공들은 모두 펜트하우스의 입주자이지만, 그래도 각 집은 '다르게 보여야' 한다. 그러한 차이를 공간의 구조나 컬러로 줄 수도 있고, 주인공의 성격과 관련된 인테리어 세팅으로 풀 수도 있다.


생각나는 것들은 이 정도이다. 하지만 매번 각을 잡고 진지한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평소 감독이 이야기하고 의사결정하는 방식에서 이 사람이 좋아하는 게 뭔지 알게 되기도 한다. 결국 내가 하고 싶고, 항상 궁금한 질문은 이거다. "무엇을 좋아하십니까?"


쓰고 보니 뭐 그렇게 감독의 생각이 중요하냐고 할 수도 있겠다. 각 파트의 전문가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감독에게 먼저 제안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그렇게 한다.) 그래도 역시, 감독의 생각을 알아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술팀이 준비한 세트에 조명팀이 조명을 비추고, 연출자는 자신의 연출을 하고, 촬영감독은 그에 적합한 그림을 찍는다. 결국 드라마는 혼자서 그리는 그림이 아니기에, 함께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야만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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