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드라마를 시작할 때
새로운 드라마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 중 하나는 필요한 일들을 리스트업 하고 달력을 정리하는 일이다. 요즘 드라마 제작은 2-3개월의 프리 프로덕션, 6-7개월 이상의 촬영기간을 가지는데, 촉박하게 돌아가지만 나름대로는 꽤 긴 기간이다. 이 기간 동안 어떻게 업무를 진행할 것인지 계획을 잘 짜야 전체 프로젝트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 어느 정도 규모의 스튜디오를 렌탈할 것인지, 미술팀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등 드라마 제작 초반의 중요한 결정들을 위해서도 프로덕션 디자인 계획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내가 사용하는 프로덕션 디자인 문서들은 다음과 같다. (정해진 양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선배들이 하던 방식을 경험하며 나에게 필요한 정보 위주로 통폐합한 양식을 만들었다. 작품마다 더 디테일하거나 더 간단하게 만들기도 한다.)
프리 프로덕션 초반에 미술팀이 연출, 제작부와 제일 먼저 협의하는 것은 ‘어떤 장소를 고정세트로 지을 것이냐'이다. 이것이 결정되어야 어느 정도 평수의 스튜디오를 구할지, 얼마동안 제작하고 언제부터 촬영을 할 지도 얘기할 수 있다. 세트/로케이션 리스트는 이렇게 초반의 주요 안건에 관해 회의하고, 전체적인 업무 스케줄을 짜기 위해 정리하는 문서다.
기본적으로 어떤 공간을 고정세트로 지을지 리스트 업하고, 사무실을 '로비, 사무공간, 휴게실, 대표사무실' 등으로 나누는 것처럼 필요한 구성이 있으면 정리한다.
그 다음에는 각 공간이 몇 회/몇씬에 나오는지, 어느 정도 빈도로 등장하며, 어떤 씬에서 중요하게 소개되는지도 체크한다. 이렇게 빈도와 중요도를 알 수 있게 씬 정리를 해놓으면, 예산의 한계나 제작여건상 선택과 집중을 해야할 때 무엇을 우선순위에 둘 지 판단하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이렇게 공간별 씬 정리를 해두면 나중에 대본을 부분적으로 찾아보기도 유용하다.
이 밖에 중요한 지문이나 특이사항은 비고란에 적는다.
고정세트 리스트는 대부분 주인공의 공간들이고, 연출자가 무엇을 세트로 지을지 이미 정한 경우가 많다. 그에 반해, 가변세트(단회성 세트)는 1-2회 촬영을 위해 잠시 지었다가 철거하는 세트이기에, 세트로 만들지 로케이션에서 촬영할지 불분명한 편이다. 이렇게 미정인 영역들에 대해 협의하기 위해서, 내가 생각하는 세트 후들도 정리한다. 연출자와 작품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누군가의 방이나 병원 등 단발성으로 등장하는 일상 공간들, 혹은 CG나 특수효과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 세트로 지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 장소에서의 촬영을 의미하는 '로케이션' 촬영도 미술세팅이 필요한 것 위주로 리스트업 한다. 장소여건에 따라 자잘한 단회성 씬에도 미술세팅이 필요한 경우가 생기지만, 일단은 극 중 주요 장소와 대본 상 미술세팅이 꼭 필요해 보이는 곳 위주로 정리한다.
로케이션 리스트를 정리하고 나면, 해당 장소 세팅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면 좋을지 그림이 그려진다. 예를 들면, 00사무실을 위한 로고와 그래픽을 만든다던지, 기자회견장 세팅을 위한 레퍼런스 이미지를 찾는다던지 등이다.
이를 위해 로고 및 그래픽 작업 리스트도 만든다. 이러한 리스트들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일들을 단순하게 진행하기 위한 일종의 to do list이다.
세트/로케이션/로고 및 그래픽 리스트를 정리하고 나면, 어떤 일을 먼저 진행하는 것이 좋을지, 언제까지 디자인을 완료하고 제작에 들어가야 하는지 등을 계획한다.
아트 캘린더에는 각종 회의 및 디자인 일정도 적지만, 실제 세트 제작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진행될지, 제작 공정별로 몇일씩 소요될지 등의 일정도 정리한다. 물리적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데는 꼭 필요한 시간이 있고, 각 공정별로 여러팀이 순차적으로 작업해야하기에 반드시 사전계획이 필요하다.
어쨌든 할 일들의 목록을 정리하고 나면, 남은 일은 순서대로 행하는 것뿐이다. 아트캘린더를 만들고 나면, 미술팀원들이 어떤 일을 어떻게 나눠서 진행할지, 세트제작의 경우 해당일정에 가능한 인력 및 업체를 미리 구성할 수도 있다.
캘린더에 계획한 일정은 여러 가지 변수들에 의해 수정된다. 번거롭더라도 수정된 일정을 캘린더에 업데이트하는 게 좋다. 그래야 다음 스케줄을 짤 때, 더욱 현실적으로 디자인 기간, 제작 기간 등을 책정할 수 있다.
어떤 분야이든 마찬가지이겠지만, 감독급이 되면 프로젝트에 대한 구체적인 플랜과 예측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미술 일정과 예산에 관한 질문에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은 미술감독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