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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K Nov 27. 2023

이미지보드에 대해서

1. 이미지보드


'이미지보드(Image board)'는 특정 콘셉트나 무드를 보여주기 위한 보드로, 초반 콘셉트회의를 할 때 유용하게 사용된다. 리서치한 자료나 영감을 주는 이미지들, 컬러나 텍스쳐 샘플 등을 모아 만든다. 예전에는 우드락이나 폼보드에 사진들을 직접 오려 붙여 만들기도 했다. 지금도 다른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그렇게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우리 회사에서는 주로 ppt나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A3사이즈로 출력한다.

(아마도 직접 사진을 오려 붙여 만드는 것의 이점은 사진을 이리저리 옮겨 붙이며 다른 아이디어로 확장해 나갈 수 있어서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지를 출력해서 오리는 작업이 꽤나 번거롭다.)


이미지보드는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필요한 자료이기도 하지만, 이미지보드를 만드는 것 자체가 디자인의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이전의 글에서 디자인하는 일이 ‘흩어진 정보들을 모아 별자리를 그리는 일 같다’고 썼는데, 바로 이미지보드를 만드는 일이 그렇다.

리서치한 이미지들을 특정 정서나 아이디어에 맞게 묶어내다 보면, 그것이 하나의 '콘셉트'가 된다. 피라미드와 유리가 만나 루브르의 유리피라미드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어떤 이미지와 이미지를 조합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된다. 이처럼 이미지보드는 시각적 콘셉트를 개발하는 단계에 꼭 필요한 과정이다.


이미지보드 역시 정해진 형식이 없고, 다양한 디자인 분야에서 각자의 필요성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보드들을 만들어 사용한다. 나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공간별 이미지보드를 만들고, 필요에 따라 캐릭터별 이미지보드, 마감재 보드 등을 만들기도 한다.


초반의 이미지보드에는 좀 더 많은 이미지 후보군들이 있고, 안정된 콘셉트로 자리 잡은 이미지부터 콘셉트와 무관하지만 깊은 인상을 주는 이미지들을 다양하게 모은다. 이렇게 수집한 이미지들을 쳐내고 보완해 가면서 프레젠테이션에 사용할 보드를 만드는 식이다. 그래서 이미지보드는 디자인이 진행됨에 따라 계속 업데이트된다.




2. 좋은 이미지보드는 어떻게 만들까?


이미지보드를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항상 명심하려고 하는 것들이 있다.


(1) 한 장의 보드에 하나의 콘셉트.

다양한 콘셉트를 한 장의 보드에 담으면 보기에도 안 좋고, 집중을 방해한다. 한 장의 보드에서 내가 하려는 얘기가 무엇인지 정하고 그에 부합하는 이미지만 모아 보여준다. 다른 콘셉트가 있다면 다른 보드를 만든다. 보드마다 제목을 부여하며, 어떤 순서로 보여줄지도 정한다. 보드의 순서는 프레젠테이션 순서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따라 전략적으로 배치한다.


(2) 중요한 이미지만 보여준다. 가장 중요한 이미지는 크게, 덜 중요한 이미지는 작게 배치한다.

아이디어가 많을수록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가 많아 탈락시키기 아쉬울 때가 많지만, 그럴 때일수록 그 이미지들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꼭 필요한지 질문해 본다. 보드를 처음 보는 사람은 생각보다 이미지를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면, 오히려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3) 보드는 시각적으로 보기 좋고, 간단명료해야 한다.

특별한 디자인 요소를 넣기보다는, 집중도를 높일 수 있는 단순한 레이아웃과 서체를 사용한다. 폰트는 한 가지 종류를 굵기만 다르게 해서 사용하는 편이다. 바탕은 흰색으로 하며, 때로 여백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크고 중요한 이미지, 여백, 작은 이미지 식의 배치를 통해서 중요한 콘셉트에 집중하고 쉬어갈 시간을 줄 수 있다. 보드가 어느 정도 완성되면, 색채나 이미지가 난잡하진 않은지, 시각적으로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는지 체크해서 더 나은 이미지로 대체하기도 한다.



3. 이미지보드의 활용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보드는 미술팀 내부에서 디자인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여러 디자이너가 공동작업을 할 때 중요한 나침반이 되어준다. 뿐만 아니라 여러 부서와의 협의에서 유용하게 활용되는데, 특히 연출팀과의 소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초반의 미술회의는 다양한 이미지들을 가지고, '어느 것이 좋을까요?'를 이야기하는 시간에 가깝다. 이때, 여러 장의 이미지보드를 전략적으로 배치하면 '따뜻한 <->차가운, 동적인 <->정적인, 클래식 <->모던'과 같은 척도에 따라 콘셉트를 나눌 수 있으며, 작품의 정서나 디자인 방향을 어느 쪽으로 잡을 것인지를 결정하고 협의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협의과정에서 선택된 콘셉트는 실제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게 되기에, 콘셉트에 관한 협의가 잘 된 경우는 디자인 과정의 수많은 선택지들이 상대적으로 수월해진다. 연출자 입장에서도 초반의 디자인 과정인 이미지보드를 보았기에, 추후 완성된 디자인이 작품 콘셉트와 상관없이 갑툭튀 한 것이 아님을 이해하게 된다.


때로는 디자인 결과물에서 생각지 못한 변수가 있거나 새로운 방향이 필요할 때, 다시 이미지보드로 돌아가 적용할 수 있는 다른 아이디어를 찾아낼 수도 있다. 그야말로 디자인을 위한 시각적 나침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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