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진심인 Aperture와 함께 여름 나기
덕질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며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
바야흐로 2023년. 국어사전에 의하면 현재 덕질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저는 여기에 '수익 창출의 유무와 상관없이'라는 문구를 덧붙이고 싶은데요, 그 누구보다 사진을 덕질하는 단체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그들은 바로바로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Aperture!
오로지 '사진'이라는 장르를 발전시킨다는 목적 하에 운영되는 이 단체는 1952년, 포토그래퍼들과 작가들에 의해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현재 Aperture는 사진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수행하며 사진 커뮤니티의 중심에서 멀티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어요. Not-for-profit 단체이기 때문에 이들의 수익은 단체를 운영하는 데에 쓰입니다. 사진에 너무나 진심이라 그런지 이들이 출판한 포토북들은 인쇄 및 종이의 질이 장난 아닌 게 느껴져요.
그래서 오늘은 Aperture에서 출판한 포토북들 중에 이 무더운 여름에 어울리는 도서들을 몇 권 추천해 드리려고 합니다:)
Book.1
Martin Parr
영국의 유명 사진작가 Martin Parr(마틴 파)가 세계 각지의 해변에서 찍은 사진들로 구성된 포토북입니다. 제목부터 너무 귀여워요. Life's a Beach! (hell yeah)
이 도서에서 주목해 보면 좋은 점은 바로 마틴 파 작가 특유의 대비가 두드러지는 화려한 색감, 그리고 해변에서의 유머러스한 일상입니다.
일상 사진들에서 은근한 풍자와 아이러니를 드러내기로 유명한 작가는 해변에서 바캉스를 즐기는 일상들 중에서도 굳이 일행 옆에서 비키니를 입은 여성 사진을 보는 남자, 뜬금없이 바닷가에 등장한 동물들을 사진으로 담아냈어요.(존귀ㅠㅠ)
작가님 뭔가 장난기 넘칠 것 같지 않나요?
그의 다른 도서들도 색감이 정말정말 예쁘니까 보실 때 한꺼번에 찾아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Book.2
Richard Misrach
사진을 보시고 혹시 요즘 흥행 중인 요시고 사진전이 떠오르신 분 있나요?
비슷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이 도서는 요시고 작가보다 더 이전부터 활동해 온 Richard Misrach(리처드 미즈락)이라는 작가의 작품집입니다.
위의 사진처럼 이 포토북은 오른쪽 페이지엔 광각으로 찍은 사진이, 왼쪽 페이지엔 확대된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보는 사람마다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온몸을 물에 맡긴 인물들을 오래 들여다보다 보면 살짝 기이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해변에 접근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멀어지고 있는 걸까요.
게다가 리처드 미즈락은 이 사진 작업에 대해 바다에 떠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미국 9·11 테러 당시 고층건물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서로 닮아 보였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갑자기 사진이 달라 보이죠,,?
사실 그는 광활하지만 황폐해 보이는 대자연을 주로 촬영하는 작가인데, 이 작업은 그가 최초로 전적으로 인간에게 초점을 맞춘 작업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포토북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드넓은 바다에 비하면 한없이 작아 보여요. 실물 책 크기도 엄청 커서 사람이 더더더 작아 보인답니다.
아름다운 사진들 속에 숨어 있는 기이함과 모호함,,어떠신가요. 더운 여름에 살짝 소름이 돋으셨을까요?
Book.3
Richard Learoyd
또 다른 Richard를 소개합니다. Richard Learoyd(리처드 리로이드)는 영국의 컨템포러리 사진작가로 19세기 초창기 사진 기술을 현대 기기에 접목해 촬영합니다. 그가 사용한 사진 기법은 카메라 옵스큐라(=dark room 라틴어로)라고 불리는 고풍스러운 기술로, 직접 방 크기의 카메라를 제작하여 그 안에 인화지를 넣고 노출시켜 촬영했습니다. 사실 말로만 들어선 어떻게 촬영했는지 감도 안 오지만 그렇대요ㅎㅎ 대형 사진들을 담은 사진집이라 실물 도서도 꽤나 큰 사이즈로 제작되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사진들이 서늘한 푸른 색감을 띄는데 덕분에 인물들이 한 명 한 명 전부 사연이 있어 보입니다. 저는 제 기준 아름다운 사진들을 위주로 가져왔지만 중간중간 피 흘리는 동물 사체들 사진도 있어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각오하고 넘겨야 해요. 포토북 사이즈가 커서 더 놀랄 수 있으니 주의 요망!⚠️
Book.4
Loretta Lux
Loretta Lux(로레타 룩스)는 독일 출신의 사진작가로, 주로 어린아이들을 촬영합니다. 티가 나는 디지털 합성이 룩스 작가 작품의 포인트인데요, 전 왠지 이 작품집을 보고 귀엽기도 했지만 살짝 으스스하다는 감상을 더 크게 받았습니다. 성인인 제 시점에서 아이들은 마냥 감정에 충실하여 천진하게 웃거나, 아님 아예 으아앙 울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해요.
실제로 작가는 작품에서 그저 무해한 어린아이들의 사진이 왜 불편하게 느껴지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곤 합니다. 사진을 보면 아이는 그냥 아이대로 있는 건데 말이죠. 현실과 허구, 아름다움과 불안, 어린아이의 순수성과 무서움 등의 이중적인 요소들을 조합한 그녀의 작품들은 독특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합니다.
생각해 보면 공포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요소가 바로 어린이 같지 않은 어린이인데요, 보통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보며 생각하는 이미지와 공포 사이에 갭이 커서일지도 모르겠어요. 어쨌든 공포 영화가 생각나는 포토북이었습니다.
Book.5
Matthew Porter
사실 이 포토북은 여름이라는 주제와는 살짝 벗어났지만 제가 떠나고 싶은 마음에 억지로 욱여넣어 본 도서입니다. 게다가 사진들이 예쁘잖아요:)
이 도서에서 Matthew Porter(매튜 포터)는 도시의 거리와 교차로 위를 날아다니는 올드스쿨 자동차들의 사진 25장을 선보입니다. 공중에 떠 있는 자동차들은 영화 펄프픽션 속 자동차 추격 신의 가상 스틸컷입니다. 영화 속 자동차들이 신 스틸러로 활약하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연작 시리즈를 제작했다고 해요.
달리는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교차로에서 붕 뜬 것처럼 보이는 사진들을 보니 저 빈티지 자동차들을 타고 당장이라도 이 습한 장마철의 여름에서 벗어나고 싶어지지 않나요?�
덕질이 활발할수록 그 시장은 성행하고 발전하곤 합니다.
그런 점에서 포토그래피라는 장르에 이렇게나 열정적으로 파고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에요.
어떤가요. 여러분들도 Aperture 만큼 진심인 분야가 있나요?
도서 목록
-'Life's a beach', Martin Parr
-'The Mysterious Opacity of Other Beings', Richard Misrach
-'Day for Night', Richard Learoyd
-'Loretta Lux', Loratta Lux
-'The Heights', Matthew Por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