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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북살롱 Oct 29. 2020

음식과 함께 인생을 나누는 사이

글: 히햐

식사하셨나요? 


한국인의 인사 중에서는 먹는 것에 대한 인사가 많습니다. 

따로 사는 자식의 안부를 묻는 부모님의 첫마디. "밥 먹었니?" 

아픈 친구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 "밥 잘 챙겨 먹어라!"

점심시간에 사무실에서 지나치며 만난 직원에게 무심코 건네는 인사말. "식사는 하셨나요?"

길에서 우연히 만난 지인과 헤어질 때 하는 말. "언제 밥 한번 먹자!" 


한국인에게 식사는 생존에 대한 안부이며, 건강에 대한 염려이며, 나아가 관계를 지속시키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한국인에게서 음식을 나눠 먹는 정서가 유독 강하기는 하지만, 이는 서구 역사에서도 지속되어 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영어의 companion(동반자), 스페인어의 compañero, 이탈리아어의 compàgno, 프랑스어의 copain, 이 모두 라틴어 COM(함께)과 PANIS(빵)에서 유래했음을 보면 말이죠. 음식을 나눠 먹으며 꿈과 희망,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은 삶의 동반자이자 친구라고 할 수 있겠죠.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 <히프, 히프, 호레이! 스카겐에서 열린 화가들의 파티>, 캔버스에 유채, 1888, 134.5 x 165.5 cm, 스웨덴 예테보리 미술관 소장


덴마크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인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1851-1909)는 결혼 후 예술인 마을인 ‘스카겐'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는 파리에서 모네 등 화가들과 교류하며 배운 인상주의 기법으로 바닷가 마을의 아름다움 풍경을 빛의 변화에 주목하여 그려 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예술인 공동체의 리더가 되어 마을에서 친구들을 불러 모아 자주 파티를 열었다고 합니다. 그림에서처럼 음식을 함께 나누며 동료애를 더 진하게 물들였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피터르 브뤼헐, <농가의 결혼식>, 패널에 유채, 1568, 114 x 163cm,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박물관 소장


친구들 간의 우정도 음식과 함께 다져 갈 정도인데, 인생의 긴 여정을 함께하는 시작인 결혼식도 예외일 수 없겠죠. 농가의 결혼식 장면을 그린 브뤼헐(1525~1569)의 작품입니다. 결혼식 장소는 허름한 창고로 보이지만, 잔치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벽에는 태피스트리처럼 담요가 한 장 걸려 있습니다. 오래된 문짝은 음식을 나누는 트레이로 사용되고 있네요. 신부는 초록 태피스트리 앞에 있는 여인입니다. 신랑은 어디 있을까요? 당시 풍습에서는 저녁이 되기 전에는 신랑이 신부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네요. 이 결혼식의 음식은 고작 술과 빵, 그리고 수프 한 그릇이 전부이지만 모인 사람들의 사이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소박한 음식을 나누며 새로 시작하는 부부의 앞날을 축복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프레더릭 코트먼 <가족의 일원>, 1880년, 캔버스에 유채, 102.6X170.2cm, 리버풀 워커 미술관 소장


이렇게 부부는 결혼하여 식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식구(食口)’ 란 ‘한 집안에서 같이 살면서 끼니를 함께 먹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위 그림 속 가족의 모습을 볼까요? 햇살 가득한 어느 날 가족들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데 말 한 마리가 문틈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자 어머니가 빵 한 쪽을 나누어 건네줍니다. 그림의 제목은 <가족의 일원>입니다. 이 집에 함께 사는 가축과 반려동물들도 모두 한 가족, 한 식구인 셈이죠. 그림 속 장면을 보면 아이들의 내는 명랑한 웃음소리, 접시와 서투른 칼과 포크가 부딪히면서 나는 소리, 할머니가 조심스레 빵을 자르는 소리, 빵을 받아먹으려는 말의 울음소리, 엄마 앞에서 애교를 부리며 꼬리를 살랑이는 강아지의 숨소리 등이 이 그림의 공간을 가득 메우는 것 같습니다. 이 공간에는 그 소리와 함께 따뜻함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공간 속에서는 말로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저절로 사랑을 배울 테죠. 그저 함께 먹고 나누면서 말이죠.


주말 저녁,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며 마음을 나누는 것은 어떨까요? 

상대가 좋아하는 음식을 말없이 앞쪽으로 가까이 옮겨 놔 주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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