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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북살롱 Oct 24. 2021

나를 만든 공간, 어린 시절 집 이야기

글: 히햐

 

    아이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되면 저는 이야기꾼이 되고는 합니다. 전등불을 끄고 나지막한 소리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잠자리 의식 중 하나입니다. 어느 날 이야기 소재가 떨어질 때면 아이들은 엄마 어릴 적 이야기를 해 달라며 졸라 대곤 하죠. ‘음 나의 어린 시절이라…’ 마음속으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옛날 살던 골목집이 떠오릅니다. 나에게 집은 무엇이었을까? 아이들의 독촉으로 어린 시절 기억의 문을 슬쩍 열어보았습니다.

칼 라르손 <기념일>, 종이에 수채, 1895, 43 x 32 cm, 스웨덴 국립미술관 소장


    어린 시절 하면 해질 때까지 집 안 구석, 앞마당, 야외 공터까지 구석을 누비며 놀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집은 어른이 된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공간들이 놀이터로 변신하곤 했죠. 특히 좁은 공간에서 하는 숨바꼭질의 짜릿한 맛. 지금 생각하면 그 좁은 집에 어디 숨을 곳이 있겠나 싶지만 작은 키의 아이가 보는 시선에는 은밀한 장소가 제법 많았던 것 같습니다. 책상 밑, 식탁 밑, 옷장 속, 옷장 뒤편의 작은 공간, 가구 위 등 작은 몸이 들어갈 수만 있다면 어디든 그곳은 나만의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그림 속에서는 작가의 어린 자녀들이 가장무도회를 하며 놀고 있는데요. 제목은 ‘기념일’입니다. 결혼식 장면이기도 한 것 같고 생일 파티를 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저의 어린아이들도 집에서 한여름에 방탄복이라며 겨울 점퍼를 꺼내 입고 장난감 총을 쏘며 전쟁놀이를 할 때면 집은 전쟁터가 되기도 하고, 동물 인형을 가지며 놀 때면 집은 초원이나 바다가 되기도 하며, 홑이불을 목에 감고 영웅 놀이를 하면 집은 영화의 배경이 되듯이 집은 가장 재미난 놀이터가 됩니다.

칼 라르손, <Getting Ready for a Game>,  캔버스에 유채, 1901, 68 x 92 cm, 스웨덴 국립미술관 소장


    이렇듯 집은 즐거운 곳이기도 하지만 마음 편히 기댈 수 있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밖에서 싸우고 들어와서 엄마에게 달려가 이르고 나면 마음이 조금 후련해지기도 했었죠. 또 언젠가는 밖에서 장난을 심하게 치고는 혼쭐날 줄 알고 차마 집에 가지 못하고 집 주변을 뱅뱅 맴돌다가 해 질 녘에 되어서야 잔뜩 긴장을 하고 집에 돌아간 적이 있었는데 의외로 엄마가 별말씀 없이 ‘어서 와라!’ ‘밥 먹자!’하면 아무 말도 안 하고 반겨주셔서 놀랐던 기억도 있습니다. 집에만 오면 편안하고 안심이 되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그것은 아마도 집에 엄마가 계셨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조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마음이 놓이는 일인 것 같습니다. 집은 엄마 품같이 편안한 안전 기지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림 속 집도 참 포근하고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실제로 작가는 자신의 집의 실내 인테리어에 많은 정성을 들였다고 합니다. 노란빛 도는 조명으로 밝혀진 실내는 눈에 보기에도 세련되고 멋있게 보이네요. 하지만 이 그림 속에서 무엇보다 빛나는 것은 그 공간에 함께 있는 가족들의 표정인 것 같습니다. 가구나 벽지만 가꾼 것이 아니라 집 안에서 흐르는 말들과 눈빛도 정성스럽게 가꾸고 다듬으며 정성을 들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칼 라르손,<Brita and me> , 종이에 수채, 1895년, 스웨덴국립미술관 소장


    지금까지 소개한 작품은 스웨덴의 국민 화가라고 불릴 정도로 스웨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칼 라르손(1853~1919)이라는 작가의 그림입니다. 자신의 가족과 아이들의 행복한 일상의 모습을 많이 그렸는데요. 스웨덴의 사람들이 닮고 싶은 가정의 모습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화가의 어린 시절은 그림처럼 아름답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작가는 가난한 동네에서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같이 살면서 좋은 돌봄을 받지 못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달리 결혼 후 자신의 가족을 지극히 사랑했던 것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화가에게 집는 새로운 인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의 삶은 선택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어른이 되고 난 후의 삶은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나갔던 것이지요. 그동안 원하던 이상의 삶을 현실로 만들면서 살아간 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칼 라르손,<Flowers on the windowsill> , 종이에 수채, 1894, 스웨덴 국립미술관 소장


    집은 힘들 땐 쉴 수 있고,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며 낄낄거리는 곳, 그리고 힘들 때는 같이 견디고 슬플 때는 같이 울어 주는 곳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어떤 조건이나 자격 없이 사랑해 주는 환대의 공간이기도 하죠.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도 따뜻한 온기로 늘 가득 차면 좋겠습니다. 가족 모두에게 집은 그런 공간이 되길 바라며 계속 집을 가꾸어 나가야겠습니다. 화분에 물을 주며 잘 자라기를 바라는 그림 속 소녀의 마음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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