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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북살롱 Oct 22. 2021

파랑새는 정말 내 곁에 있더라

글: 세잎클로버

빈센트 반 고흐, <과수원과 오렌지색 지붕 집>, 캔버스에 유채, 1888, 38 x 76 cm, 개인 소장


    이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의 <과수원과 오렌지색 지붕 집>입니다. 활짝 핀 과수원의 꽃이 정말 아름답죠? 이 그림은 고흐가 지나친 흡연과 음주로 고통을 겪고 아를로 이사한 1888년 5월에 그린 것입니다. 그림에 있는 오렌지색 지붕 집에 내가 산다면, 봄날 어느 때나 창밖으로 저렇게 꽃이 만발하게 피어 있다면, 집 밖으로 잘 안 나갈 것 같아요. 아니, 꽃을 더 가까이서 보러 밖으로 나가 산책을 많이 했을까요? 


    이 그림을 보면 고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던 일이 하나 떠오릅니다. 몇 년 전 어느 날, 저와 남편은 벚꽃을 보고 오자고 당일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벚꽃으로 유명한 진해나 하동 같은 곳은 벚꽃보다 사람을 더 많이 볼 것 같아 탈락. 경주는 작년에 갔다 와서 탈락. 속초는 날이 추워 아직 안 피었다고 해서 탈락. 그렇게 사람 적고 안 가 본 곳을 찾다가 우리가 가기로 한 곳은 공주였어요. 서울보다 남쪽인 충청남도이니까 벚꽃이 많이 피었을 것이고, 무령왕릉과 공주국립박물관 등 볼거리도 많고, 벚꽃으로 아주 유명한 곳은 아니니까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었죠. 블로그에 나온 소담스러운 벚꽃은 우리 둘의 마음을 두근두근 설레게 했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남편과 저는 아침 일찍 일어나 들뜬 마음으로 버스에 몸을 싣고 2시간을 달려 공주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터미널에 내린 우리를 맞아 준 건 잔뜩 낀 먹구름이었어요. 날씨는 그날따라 왜 그리도 쌀쌀한지, 도무지 밖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위의 풍경은 아직도 겨울이었고, 가로수에는 잎도 아직 안 났고, 우리를 맞아 준 꽃은…… 개나리였습니다!


개나리(본인 촬영)


    날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남편과 저는 도심에 있다는 공주의 벚꽃 명소로 갔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공주 벚꽃은 우리를 보기 좋게 배신했습니다. 그곳의 벚나무는 기대보다 좀 적었고, 그나마 다 피지 않은 꽃봉오리만 가득했던 거예요. 예년보다 낮은 기온 탓이었지요. 공주 도심을 걸어서 관통해 겨우겨우 도착했던 저와 남편은 다리도 아프고 마음도 아픈 채, 공주국립박물관에 갔던 것을 위안 삼으며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보았던 겁니다. 고흐의 저 그림처럼, 우리 집 아파트 단지에 줄지어 서 있는 벚나무에 벚꽃이 활짝 피어 있는 것을.


    그걸 본 남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파랑새는 집에 있었네.”


치키홍, <솜사탕 둥지>, printed on canvas, 2018, 30x20 cm


    정말 우리가 보고 싶었던 소담스러운 벚꽃은 바로 곁에 있었던 것입니다. 내 곁에 있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행복을 찾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내가 항상 볼 수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은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닌지, 꾀죄죄한 몸과 지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서야 느꼈습니다. 


    다시 고흐의 그림을 볼까요? 꽃이 만발한 나무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에는 오렌지색 지붕 집, 즉 자신의 집에 시선이 멈춥니다. 저 밖에 있는 것들이 살랑살랑 손짓하는 곳을 따라 뛰쳐나가 보지만, 그렇게 길을 나섰다가 눈과 발이 향하는 곳은 결국 집인 거죠. 행복의 파랑새는 정말 가까운 곳, 내가 몸을 누이는 집에 있음을,, 이 그림은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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