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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북살롱 Oct 20. 2021

나의 영원한 집, 엄마

글: 나나

    어린 시절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늘 갓 쪄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나 고구마가 있었습니다. 구황작물보다 한창 과자가 좋았을 나이였던 지라 ‘과자 먹고 싶은데’하고 궁시렁대며 입을 잔뜩 내민 채 식탁에 앉으면, 엄마는 신기하게도 그 뜨거운 고구마를 이리저리 휙휙 돌려가며 금세 껍질을 까 ‘건강하게 먹어야지’ 하며 내게 쥐여 주었습니다. 지금 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그때 뜨거워 손에 겨우 쥐던 고구마의 온기가 떠오릅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툴툴대는 내게도 뜨거운 고구마를 후후 불어 쥐여주는 엄마의 품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루이스 부르주아 <Femme Maison> 린넨에 오일과 잉크, 1945-1947


    그래서인지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의 <여성의 집(Femme Masion)>을 보자마자 단번에 엄마가 생각났습니다. 표정을 알 수 없는 그림 속의 몸은 의연하게 집을 이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연약한 모습입니다. 얼굴 대신 집을 우뚝 들고 서 있는 그림 속의 몸은 내게도 든든한 집이 되어준 엄마와 닮았습니다. 스물넷, 어리디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고 수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을 우리 엄마. 혹여 그렇게 얼굴을 대신하게 된 집이 엄마의 숨을 막히게 하진 않았을지. 그림 속 집을 거두어 내고 나면 스물넷 소녀 같은 엄마의 얼굴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좌: 일본 롯폰기 힐스에 위치한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 (직접촬영) / 루이스 부르주아의 일러스트 책 「Ode à Ma Mère」 중 ,1995, 드라이포인트, MoMA


    루이스부르주아는 9M가 넘는 커다란 청동 거미 작품인 <마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의 삶을 고백적으로 작품에 담아내는 부르주아에게 <마망>은 그녀의 어린 시절과 엄마에 대한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요. 그녀의 부모님은 카펫을 짜고 수선하는 태피스트리(tapestry) 공장을 운영했습니다. 몸이 약했던 그녀의 엄마는 아빠가 일하지 않는 날에도, 아빠의 외도를 알게 되었을 때도 묵묵히 출근해 실을 뽑으며 일을 했고, 그녀는 그런 엄마가 거미를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가느다란 청동 다리로 우뚝 서 있는 거미에게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면 배 속에 17개의 대리석 알을 품고 있습니다. 부르주아에게 엄마는 누구보다 단단하게 서서 자신의 알을 지켜내는 커다란 거미 같은 존재였나 봅니다. 약한 몸으로 평생 가정을 지키기 위해 고생하다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엄마였기에 그녀에게 '엄마'라는 단어의 의미는 더욱이 특별했을 것 같습니다. 


루이스 부르주아 <Femme Maison> 1945-1947, 린넨에 오일과 잉크 & <Femme Maison> 1947, 린넨에 오일과 잉크,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소장


    앞서 소개한 부르주아의 '여성의 집(Femme Maison)' 시리즈는 그녀의 초기 작품입니다. 마망이 그녀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라면 '여성의 집' 시리즈는 엄마로서의 작가 자신의 초상화 같아요. 세 아이의 엄마였던 그녀 역시 '엄마'라는 이름 아래 종종 자신의 이름,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지워야 했을 겁니다. 우리의 엄마들이 그래왔듯이 이름으로 불리기보다 누구누구의 엄마로 더 많이 불리면서요. 



루이스 부르주아 <Femme Maison / to eat or be eaten> 1985, 보드에 오일, 오일 스틱, 연필


    얼마 전 큰 수술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퇴원한 지 이틀도 채 되지 않아 부산스럽게 나물을 무치고 김치를 담그기 시작합니다. 안쓰럽고 답답한 마음에 “엄마 대충 먹자. 제발 좀 쉬어”라는 말에 엄마는 “일하고 왔는데 어떻게 대충해서 먹이니. 나물 하나만 있어도 얼마나 맛있는데”하고는 상을 차립니다. 함께 반찬을 놓으며 엄마를 보니 이것이 엄마만의 자부심이었던 것도 같아요. 그래야지만 마음이 놓이는 게 엄마인가 봅니다. 이런 엄마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루이스 부르주아의 <여성의 집>을 바라보니 그림 속 여성의 몸이 답답해 보이기보다 위대하고 숭고하게 느껴집니다. '엄마이기 때문에 저 무거운 집도 꼿꼿이 들어 올렸던 게 아닐까.' 그런 엄마가 있었기에, 그렇게 단단하게 서 울타리가 되어주었기에 나는 늘 안전했습니다. 


고마워 엄마, 이제는 집은 잠시 내려두고 엄마의 인생을 더 즐겨줘.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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