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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북살롱 Oct 22. 2021

순수한 어린 시절이라지만

글: 세잎클로버

앙리 마티스, <피에르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1909년, 40.6 x 33 cm, 개인 소장


    이 그림은 앙리 마티스의 <피에르의 초상>입니다. 화가의 아들을 그린 초상화인데, 그림 속 아이는 푸른 줄무늬 옷을 입고 있고, 모자 같기도 하고 불꽃 같기도 하고 후광 같기도 한 무언가가 아이 뒤에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한 진지한 표정이죠. 


    중세까지는 어린 예수와 아기 천사 외에 사람 어린이의 초상화가 거의 없었습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축소판으로 인식되었고, 어릴 때부터 어른의 일을 해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아이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아이답게 담기 시작한 때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활동할 때부터라고 해요. 그러다가 1900년경부터 화가들이 ‘아이의 시선’, 즉 아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보기 시작한 때가 생각보다 정말 얼마 되지 않았네요. 마티스는 자신의 예술이 어린 시절에 대한 탐구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대요. 그래서인지 말년에는 어린이가 그리는 그림처럼 단순하게 그리려고 아주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자신의 기교를 그림에 넣지 않기 위해 긴 막대기에 붓을 고정시켜 그릴 정도였으니까요. 


    다시 한 번 위의 초상화를 볼까요? 아이의 눈이 상당히 또렷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아이가 겪고 있는 저 시기에 어떤 시선을 지니고 있는지 어른은 뚫어져라 보면서 알고 싶어 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화가를 마주 보고 있지 않은 듯합니다. 나름 진지하게 자신의 일을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요.


장 바티스트 그뢰즈, <교과서를 읽는 소년>, 캔버스에 유채, 1757, 62.5 x 49 cm, 스코틀랜드 내셔널 갤러리


    어린아이의 마음을 ‘동심’이라고 합니다. ‘동심’ 하면 보통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떠올리지요. 여러분은 어린 시절, 순수하셨었나요? 


    그림 하나를 더 보겠습니다. 프랑스의 화가 장 바티스트 그뢰즈의 <교과서를 읽는 소년>입니다. 교과서를 외우는 소년의 진지한 모습을 담았습니다.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어른의 그것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죠? 아주 공부를 잘하는 어린이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즐거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어린이의 순수함보다는 그 나이에서 과제 때문에 겪어야 하는 고뇌가 더 깊이 보입니다. 저 나이때쯤의 저처럼 말이죠. 


    초등학교 1학년 받아쓰기부터 시작이었습니다, 학업에 대한 고민은. 성적에 대한 경쟁심이 꽤 셌습니다. 그만큼 성적도 따라와 주었죠. 그 성적만큼 주위의 시선과 기대도 달라졌습니다. 저는 공부를 잘하는 데서 오는 특권을 잘 이용할 줄 알았던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공부에 매달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공부 자체가 즐겁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 반의 저 친구를 이기겠다는 경쟁심이 공부의 주된 이유였답니다. 저 친구를 이기면 그 순간 공부의 끈은 느슨해지게 되지요? 그러니 자율적이지만 타율적인, 내가 내 한계를 지어 놓고 살아갔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글쎄요… 세상 물정을 모르는 데서 오는 순수함은 있었겠지만, 제가 아는 그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그만큼의 때가 묻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민도 많았고, 적당히 착했고, 적당히 성실했고, 적당히 교활했지요. 그래서 지금도 아이들을 보면, 그들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며 어떤 역할이든지 하고, 그러면서 이런저런 문제로 고민하겠지 싶습니다. 그 세계는 더 넓어질 것이고, 또 그만큼의 늘어나는 생각과 고민을 안고 살아가며, 어린시절은 지나가고 어린이는 어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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