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다행
요새 성형했다는 것을 당당히 밝히는 ‘성밍아웃’을 웃음 소재로 활용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는 걸 보면 성형수술이 점점 더 흔해지는 것 같습니다. 저도 여러 번 성형 권유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다른 지인이 아니라 저희 어머니로부터 말이에요.
저에겐 많은 별명이 있는데요, 그중 오랜 기간을 장악했던 건 '부시맨'과 '타이슨'입니다. '몽타주'란 말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이건 좀 충격). 대충 어떤 스타일인지 감이 오실 거예요. 어머니는 수슬 비용도 전액 지원해주겠다고 하실 정도였지만 수년 동안 거절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자고 하지만, 보기 좋은 사람에게 더 호감이 간다는 걸 어머니도 잘 아시니까 그러셨을 겁니다. 저도 보기 좋은 만큼 더 좋게 느끼는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봅니다.
이런 사례는 지금의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19세기 유럽에서도 있었습니다. 위의 인물은 네덜란드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키스 반 동겐(Kees van Dongen, 1877-1968년, 프랑스로 귀화)입니다. 어때요? (한숨을 쉬며) 잘 생기지 않았나요? 당시 가난한 화가들에게는 모델 섭외 비용이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반 동겐은 초기에 재정적인 여유가 없던 시기에도 비용 걱정이 상대적으로 덜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의 세련된 외모 덕분에 여성 모델들이 기꺼이 나서 줬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내가 정우성처럼 생겼다면, 혼자 살아도 상관없고 주위에서는 그걸 오히려 부러워할지도 몰라.'라고 말이죠. 더 이상의 가슴 아픈 상상은 생략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제 얼굴로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단, 키는 제외). 부모님이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그래~도 키는 제외). 게다가 40년 가까이 살아오는 동안 정말 열정적으로 키워주시고, 지원해 주셨으니까요. '사랑'의 매도 부족함 없이 받고, 오락실에서도 많이 잡혀갔지만, 진로와 관련해서는 항상 제 의견을 존중해 주셨습니다.
그런 사랑과 헌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좋은 부모님 만나서 잘살고 있다는 말씀도 간간이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이런 말씀을 드리면, “그래야잉.”이나 "뭣이 그래야. 네가 잘한 거제."라며 정말 뿌듯해하시더라고요. 그럼 저도 덩달아 기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반 동겐이 모델을 섭외하는 데 어려움이 적었던 게 단지 그의 우월한 외모 덕분이었을까요? 1892년, 그가 네덜란드 로테르담 왕립예술학교에서 미술을 배우기 시작한 시기에는 한때 조롱을 받았던 인상주의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시기였습니다. 그 역시 그곳에서 후기 인상주의를 배웠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전형적인 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고 맙니다. 그리고 훗날 야수파가 되는 그답게 거친 붓 터치에 강렬한 색감을 이루는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 나갔습니다. 전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의 작품과 같은 무난한 인상주의 스타일을 가장 좋아하는데요, 전혀 다른 스타일인 반 동겐의 거친 강렬함을 마주할 때도 매번 그냥 지나치지 못했어요. 아마도 속마음까지는 쉽게 드러내지 않는 듯한 인상주의 스타일과는 달리 강렬한 내적 본능을 자극하는 화풍이 저를 비롯한 당시 사람들을 사로잡지는 않았을까요? 반 동겐만의 개성으로 말이에요.
저에게는 특별히 내세울 게 없지만, 다행히도 미소가 괜찮다는 이야기는 종종 듣습니다. 달리 칭찬할 게 없어서 그런 거 같지만, 그래도 최소한 나쁘지는 않으니까 하는 말이겠죠? 반 동겐의 사례에서도 보았듯이 잘생긴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만의 개성도 있어야 함을 알게 되었으니 굳이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게 낫겠죠?
그런데 말입니다, 내 나이 40. 그런 저도 결국 깠습니다... 제 의지로 말이에요. 그동안 성형을 안 했던 건 성형이 무섭기도 하고, 해도 뭐 얼마나 달라지겠냐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강한 인상은 좀 누그러뜨리고 싶어서 티 안 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주위에서 잘했다는 말이 많네요. 자리 좀 잡고 나면 좋은 일도 생기고 그럴까요? 아니면 역시나 괜한 김칫국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