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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북살롱 Oct 20. 2021

서른셋. 무언가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 혹은 이른 나이

글: 나나

    서른 즈음에는 흔히들 말하는 ‘어른’이 되어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건축 공부를 하던 대학생 때만 해도 서른 살이면 내 이름을 건 건축물 한, 두 개는 만들었겠지 싶었죠. 현실은 서른셋의 지금도 여전히 진로를 고민하는 스무 살 중반 모습 그대로입니다. 아직도 반찬 투정하지 말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듣는 걸 보면 몸뚱이만 커졌지 스무 살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막상 이제 와 무언가 시작하기엔 ‘에이, 그러기엔 좀 늦은 나이지’라는 걱정이 앞섭니다.



원주에 위치한 안도 다다오의 ‘뮤지엄 산’ (직접촬영)


    그도 그럴 것이 건축계의 이력은 정말 화려합니다. 용기를 얻어보려는 심산으로 늦은 나이에 성공한 건축가를 검색해보면 50세를 넘겨 세상의 빛을 본 거장, 루이스 칸(Louis Kahn, 1901-1974)이 종종 소개되는데요. 그 역시도 대학에서 건축 교육을 받고 서른여섯에 이미 자신의 건축 사무소를 차렸습니다. 눈을 돌려 정규 교육 없이 독학으로 공부를 한 노출 콘크리트 건축의 대가 안도 다다오(Tadao Ando, 1941-)만 살펴보아도, 그 역시 건축 대학을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15평의 인테리어 설계 일을 했었고 스물여덟에 자신의 건축 사무소를 차립니다. 한술 더 떠서 현대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는 열일곱 살에 첫 주택을 설계하였다고 하니 서른셋은 건축을 다시 시작하기에는 늦어도 정말 늦은 나이인가 싶습니다.


프랑스에 위치한 르코르뷔지에의 ‘빌라 사보아(Villa Savoye)’ (직접촬영)

 

   건축계만의 일이 아닙니다. 심지어 자유로울 것만 같은 예술계에서도 떡잎부터 다른 될성부른 나무들이 수두룩 빽빽합니다. 미술 시간 한 번쯤 "에이, 나도 저 정도는 그릴 수 있겠다"를 외치게 만드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역시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감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가 열다섯 살에 그린 그림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섬세하고, 아홉 살에 그린 그림은 현대적이고 감각적이기까지 합니다. 이런 타고난 천재들 앞에서 평범한 서른셋 어른이는 '그래, 나는 이미 늦어도 너무 늦었지' 하며 불타는 예술혼을 고이고이 접어두고 출근 준비를 합니다.


좌: 피카소가 15살 때 그린 그림 / 우: 피카소가 9살 때 그린 그림


    하지만 문뜩 백 세 시대라는데,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언 70년은 남았을 저로서 '늦었지, 늦었어'만 외치며 한탄하기엔 조금 억울한 기분도 듭니다. 건강하게 먹고 부지런히 움직인다면 새로운 우물을 팔 날이 70년은 되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새싹이 온 힘을 다해 싹트는 봄에는 얄미운 남다른 떡잎들에 기죽기보다 늦은 나이에도 성공한 늦깎이 천재들을 바라보며 행복한 상상을 하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반 고흐 <이젤 앞의 자화상> 1888, 캔버스에 유채, 66 x 50cm & <붕대 감은 귀 자화상> 1889, 캔버스에 유채, 60 x 49cm, 코톨드 갤러리 소장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로도 불리는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가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해는 1880년, 그가 스물여덟 살이 되던 해입니다. 서른셋보다야 어린 나이지만 당연히 목사가 되어야 했던 집안의 분위기 속에서 화가의 길을 선택한 그의 결심은 서른셋의 저보다 더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을 것 같아요. 비록 생전에 주목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열광하는 작가가 되었으니 이 정도라면 스물여덟의 시작에도 불가능은 없어 보입니다.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 1897, 캔버스에 유채, 130 x 201cm


    고흐만으로 아직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우리에겐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84-1910) 형님이 있습니다. 몽환적인 정글의 풍경과 꿈속에서 만난 것 같은 사막의 사자와 집시를 그려낸 루소는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공무원이었어요. 세관원으로 근무하던 그는 취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휴일인 일요일에만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일요일의 화가'로 불리기로 했다고 합니다. 루소는 마흔아홉이 되어서야 자신만의 아뜰리에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전업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전업 작가로 전향을 했다고 하지만 젊은 시절부터 작가의 길을 걸어온 다른 화가들에게는 어딘가 기술적으로 엉성해 보였을 테죠. 한참 어린 피카소에게도 놀림을 받기 일쑤였다고 해요.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고 결국 피카소도 인정하고 애정하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독자적 화풍을 만들어 갔습니다. 


앙리 루소 <나 자신> 1890, 캔버스에 유채, 146 x 113cm


    만국기를 펄럭이며 지나가는 배 보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에펠탑보다도 자신을 크게 그릴만큼 화가로서 자부심과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가득했기에 루소. 스스로에 대한 믿음 덕분에 루소는 주변의 걱정이나 비웃음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한 해, 한 해 늘어가는 숫자만큼이나 당당하게 '야이~ 야이~ 야,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외칠 수 있는 용기와 자신에 대한 애정, 그리고 믿음 아닐까요?

    서른셋, 혹은 마흔아홉. 누군가는 무엇을 시작하기에는 한없이 늦은 나이라고 걱정 어린 조언을 건넬 수도 있는 나이이지만 행복한 시작을 하기에 한없이 어린 나이일지도 모릅니다. 올해는 우리 모두의 나이가 스물한 살로 리셋 된 것처럼 정말 마음이 두근대는 일을 시작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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