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는 사적 허용
도대체 관대할 수가 없단 말이지.
그 말들 속에 얼마나 많은 쓰레기들이 있었을까 심히 괴로워진다.
시에는 시적 허용
일에는 사적 허용
人에는 인적 허용
술에는 취적 허용
이게 나는 너무 궁금했거든.
아무도 묻지 않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는 이게 진짜 너무 궁금한 거야.
그래서 생각해 봤지.
아니 사실...
그렇게 하면 변명이 될까 싶어 발악해 본 거지.
자기 검열 → 자기 성찰 → 자기 변명 → 자기 위안 → 휴... 무사히 생존 가능
혹은
자기 검열 → 자기 변명 → 자기 위안 → 휴... 어찌어찌 생존 가능 → 자기 성찰
보통 '자기 검열'이라 함은 외부의 반응에 대응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의 경우, 자기 검열은 대체로 나 자신 즉, 나의 내부를 향한다.
그래서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 것이냐' 보다 중요한 것이 '내가 나를 어떻게 납득시킬 것이냐'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도 묻지 않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도 나는 끝없이 나에게 물어 답을 얻어 내려고 애쓰게 된다.
도대체 내가 왜 그랬을까. 왜 그랬니. 왜 그런 거니. 응?
평소 정제되고 절제된 것을 지향하는 내가 알코올이 과하게 들어감과 동시에 이 '초자아(Super-Ego)'의 고장으로 검열의 기능에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아, 매번은 아니고 아주 가끔, 그러니까 '과하게' 들어갔을 경우나 '과하게' UP! 되었을 때. 역시 과한 것은 문제가 있어.)
제일 괴로운 것이 절제가 잘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말이 많아지는 것은... 심히 괴롭다.
바리케이드가 사라진다고 해야 하나.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들, 알려주지 않았을 것들, 좀 참았을 말들을 정제 없이 하게 된다는 것인데... 이것은 비단 음주 시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가끔 그다지 가깝지 않은 사람을 만나 맨 정신에도 이상하게 말을 많이 하게 되는 날이 있다.
왜 그렇게 마음에 무장이 해제되어 버리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고 나면 그제야 검열의 기능이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아... 왜 그랬지... 싶어 진다는 거다.
빈약한 영혼을 거기다 탈탈 털어 붓고 껍데기로 돌아온 기분이랄까... 한 없이 부끄러워지면서 말이다.
그런데 인간은 말이지, 어차피 망각의 동물이야.
잘못하고 반성하고 잊어버리고 또 잘못하고... 끊임없이 행동과 망각을 반복하게 될 텐데
그렇다면 어느 날에 내가 또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어디까지 나 자신을 허용할 것인가.
자, 기준을 만들어 보자.
Q.
첫째,
모든 생명에 대해 존중을 갖고 해를 가하지 않았는가?
A.
오케이.
일단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고귀하다.
그 생명에 반하는 것은 어떤 것도 옳지 않다.
Q.
둘째,
인간을 급으로 나누지 않았는가?
그 나눈 급에서 내가 우위에 있다고 은연중에 피력하지 않았는가?
그 급은 어떤 기준으로 나누었는가?
A.
팩트 → 나는 어떤 기준의 급으로도 우위에 있지 않다.
그러니, 잘난 체하고 말 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있는 척하지 말자.
그리고 애초에 인간이란 그렇게 어떤 급으로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법 앞에는 못 평등하더라도 신神 앞에서는 모두 하찮은 미물이다.
다만, 뭣도 없으면서 난 체 하는 인간들은 좀 무시해 줘도 된다고 생각한다. 쳇.
Q.
셋째,
말이 많았다고 쳐. 그런데 말의 태도에서 말이지.
상대방을 티 나게 혹은 티 안 나게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상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어쭙잖게 충고 따위를 건네진 않았는지.
A.
술에 취하면 이걸 내가 인지할 수 있을까?
그런데 말이야.
그런 마음을 품고 있으면 술이 아니라 맨 정신에도 어차피 드러나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 방법은, 애초에 그런 마음 자체를 갖지 말자.
누가 누굴 무시하니. 누가 누구에게 충고를 하니.
너나 잘 살자. 나나 제대로 살자.
Q.
넷째,
계산적으로 굴진 않았는지.
이건 여러 의미에서야. 감정적이든, 금전적이든.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굴리진 않았는지.
A.
가장 현실적인 문제 이긴 하지.
하지만, 일단 누군가를 보겠다고 나왔으면 그러지 말아야 해.
찌질하잖아.
감정적이든, 금전적이든. 솔직하고 순수해야 해.
뒤돌아서면 한 없이 부끄럽고 작아질 거야.
스스로를 찌질한 인간으로 만들지 말아야지?
이만하면 되지 않을까?
기준이 많으면 그것도 피곤해지는 일일테니, 그 기준이 자신을 너무 옭아매게 될 테니.
가끔 어떠한 이유로 검열의 기능이 고장이 나더라도, 이성이 다시 찾아왔을 때 이것만 돌아보고 괜찮겠다 싶으면 더 이상 괴로워 말고 나를 닦달하지 말자.
그리고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자.
나를 위해, 너를 위해.
끝을 향해 가는 우리의 시간을 위해.
[ 檢閱 , Censorship, Censure ]
검열은 이드(Id)에서 생기는 본능적 욕구를 초자아(超自我, Super-Ego)에 의해서 수정하는 일을 뜻한다. 이 수정은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진다. 프로이트(Freud, 1856-1939)는 정신분석학에서 꿈 해석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꿈의 한 과정으로서 꿈-검열을 제기한다. 수면 중에 무의식적인 욕구는 의식 밖으로 쉽게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꿈-검열 작용은 이러한 무의식적 욕구의 표출을 억제하려 하고, 결국 양자 간에 타협이 이루어짐으로써 꿈의 내용이 형성되게 된다. 꿈의 내용은 의식에 나타나기는 하지만, 잠재된 욕망으로서의 참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원래의 충동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되고 수정된 가면을 쓰고 의식에 나타난다. 이 억제와 수정의 과정을 프로이트는 꿈에 있어서의 검열 작용이라 칭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이러한 검열 체계는 꿈에서만 적용되는 특정한 기제가 아니다. '억압된 무의식'과 '검열하는 의식'이라는 두 심리 심급의 갈등은 우리의 정신생활 전반을 지배한다. 히스테리 증상, 강박 관념, 망상들을 포함하는 일련의 병리학적 현상들은 꿈과는 달리 일상적 현실에서 갈등하는 두 심리 심급이 제시하는 타협점이다. 즉 억압된 무의식이 의식의 검열을 통과해 나타나는 충동의 표현이 병리학적 현상들이라는 것이다.
모든 인간행동의 표현은 이러한 검열을 통과한 본능의 표현이고, 꿈에서도 똑같은 작용이 이루어진다. 인격을 무의식·자아·초자아를 포함한 전체로 볼 때, 검열을 관장하는 것은 초자아(超自我)이다. 즉 검열은 무의식적 충동이 의식의 표면에 나타나려 할 때, 그 충동을 평가하고 비판하며 때로는 억제하는 기능이다. 자아와 초자아는 함께 이 검열 기능을 가지며 충동을 변용한다.
이러한 억제 작용은 작가가 권력자의 탄압을 두려워하여 진실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자기표현을 완화하고 변형시키거나, 또는 알아챌 수 없도록 위장하는 행위와 비슷하기 때문에, 검열 혹은 자기 검열이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한다.(이봉일)
프로이트, 『정신분석 강의』, 임홍빈·홍혜경 역, 열린책들, 2003년
프로이트, 『새로운 정신분석 강의』, 임홍빈·홍혜경 역, 열린책들, 2003년
프로이트, 『꿈의 해석』, 김인순 역, 열린책들, 1997년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검열[檢閱, Censorship, Censure]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 1. 30., 한국문학평론가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