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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Jun 24. 2023

데미안

- 헤르만 헤세 -



비합리적이고 이상하고도 꿈틀거리는 자연 형태에 몰두하다 보면, 이런 형태들을 있게 한 의지력과 우리의 내면이 서로 일치한다는 느낌이 생겨난다. 물론 곧바로 그런 일치감을 우리 자신의 변덕으로, 우리 자신의 창작으로 여기려는 유혹을 느끼지만 우리는 자신과 자연 사이에 있던 경계가 흔들리면서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되며, 또한 이런 형태들이, 외부의 인상이 우리 망막에 맺혀서 생긴 것인지 아니면 내면의 인상이 눈앞에 나타난 것인지 모르는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창조자인지, 우리 영혼이 언제나 끊임없는 세계의 창조에 얼마나 많이 동참하고 있는지를 그렇게 쉽고도 간단하게 알아낼 수 있는 길은 이런 연습 말고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나뉘지 않은 동일한 신이 우리 안에서, 그리고 자연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외부세계가 붕괴한다면 우리 중 한 명이 세계를 다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산과 강, 나무와 잎새, 뿌리와 꽃, 자연의 모든 형태가 우리 안에도 미리 새겨져 있으며 바로 영혼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영혼의 본질은 영원성이며 우리는 그 본질을 알지 못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대개는 사랑의 힘, 창조의 힘으로 느껴진다.




"인식의 첫 불꽃이 깜박거리면 그는 인간이 되지."


"나한테 말하지 않는 꿈을 꾼다는 걸 알아. 그걸 꼭 알고 싶진 않네. 하지만 이 말은 해두지.

그 꿈대로 살고, 그것을 놀이하고, 그것을 위해 제단을 만들게!

우리는 우리 안에서 매일 세계를 새롭게 만들어야 해. 안 그랬다간 우린 아무것도 아니게 되니까."




깨어난 인간에게는 단 한 가지, 자기 자신을 탐색하고, 자기 안에서 더욱 확고해지고, 그것이 어디로 향하든 자신만의 길을 계속 더듬어나가는 것 말고는 달리 그 어떤, 어떤, 어떤 의무도 없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진정한 소명이란 오직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그것뿐이다.


나는 자연의 내던짐이었다. 불확실성을 향한, 어쩌면 새로움을 향한,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향한 내던짐이었다. 그리고 태고의 깊이에서 나오는 이 내던짐이 완전히 이루어지도록 내 안에서 그 의지를 느끼고, 그것을 완전히 나의 의지로 삼는 것, 그것만이 내 소명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나는 이미 많은 고독을 맛보았다. 하지만 이제 그보다 더 깊은 고독이 있음을, 그것이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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