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김훈 >
간결하게 말하고 간결한 문장을 추구합니다.
중언부언하지 않는 것 즉, 했던 말을 다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생존의 문제와 직결돼요.
왜냐하면 다른 작가가 열 페이지에 걸쳐 쓸 내용을 나는 한 페이지 안에 쓰기 때문입니다.
소설의 양이 나오지가 않아요. 아주 곤혹스럽습니다.
또 이런 간결한 문장은 독자에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고민을 좀 하긴 합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친절할까 하고요.
그래서 글자를 추가하기도 하는데 결국, 추가한 글자를 삭제하게 되더라고요.
수다스럽지 않은 것, 이것이 나의 글쓰기 철칙입니다.
나는 누가 나를 감독해 줄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스스로 감독이 되지 않으면 망가져요.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내가 나의 감독이 됩니다.
광화문 교보문고 밑에 가면 스타벅스가 있거든요.
거기에 몇 시간이고 앉아서 지나다니는 사람을 봅니다.
다섯 시간이고 여섯 시간이고 앉아서 가만히 지켜봅니다.
그러면 한 사람 한 사람 지나갈 때마다 그렇게 감동적이에요. 엄청난 감동이 밀려와요.
그런데 감동적이지만 그것을 글로 쓸 수는 없어요.
감동이 오지만 또 절망이 오죠.
이야기가 떠오른다고 모두 글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러면서 정작 책을 읽지는 않아요. 책을 가득 쌓아 놓고는 읽지는 않는 거죠.
아이들에게 책을 읽을 환경도 주지 않아요. 국, 영, 수를 배우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어요.
사실, 책에서 배우는 것보다 자연에서 배우는 것이 훨씬 많아요.
자연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안에 진리가 있습니다.
책 많이 읽지 않아도 돼요.
우리는 자연이나 현상에서 배워야 합니다.
현상들... 이를테면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 같은 것,
그리고 요즘 뉴스에 나오는 비극적인 죽음과 그 어미에 관한 이야기들.
독서를 우상시하는 것을 버려야 해요.
딱 누구라고 지칭하긴 어렵지만 대부분의 젊은 작가들이 우리 때와는 달라요.
그들만의 소소하지만 내밀한, 어떤... 작은 것들을 깊게 들여다보지요.
확실히 우리 세대가 보지 못하는 것을 봐요.
그런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어요.
내가 기계를 아주 싫어합니다.
내가 다루는, 다룰 줄 아는 기계는 자전거가 유일합니다. 오 년 전까지만 해도 자전거를 탔거든요.
그 외에는 모든 기계를 아주 싫어해요.
그래서 연필을 사용하는데 편집자들이 좀 싫어하죠. 힘이 들죠.
그런데 연필로 글을 쓰면요,
육체가 밀고 나가는 느낌이 있어요. 내 육체를 이용해서 무언가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
그 느낌이 아주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아마 죽을 때까지 연필로 글을 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