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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Jul 01. 2023

아버지가 떠났다.



한 남자의 아버지가 떠났다.

아버지는 먹지도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한 채 9년을 병원 침대 위에서 살았다.

등에 생긴 욕창은 사라지지 않았고, 염증으로 인한 고열은 일주일 내내 계속되었다.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얼마 남지 않으신 것 같다는 연락을 받은 남자는 집에서도 놓지 못한 업무를 처리하면서 독한 술을 마셨고, 새벽잠에 들며 홀로 쓸쓸히 눈물을 흘렸다.

다음 날, 남자는 출근 시간이 다 되도록 일어나지 못했다. 술 냄새가 진동을 하였고 눈을 뜨는 것도 힘들어했다. 

내가 그를 보아온 20년 동안,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그 남자는 내 남편이다.


힘겹게 출근을 한 남자는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죽음을 듣게 되었다.

이렇게 하루 만에 맞이할 죽음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

아버지의 죽음을 듣고도 그는 직장에서 남은 일을 해야 했다.

서류를 작성하고 문서를 검토를 하고 사람을 가르쳐야 했다.



- 당신, 괜찮아? 일할 수 있어?

- 안되는데... 어쩔 수가 없어.

  누가 대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삶은 이럴 때조차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젖은 종이처럼 기운 없이 퇴근한 그를 말없이 안아주었다.

내 어깨에 머리를 묻고 두 팔로 나를 싸안으며 한참을 가만히 있던 그가 말했다.



- 당신이 나보다 훨씬 먼저 고아가 되었었네...

- 그래. 그랬지. 

  당신도 이제 고아야. 우리 둘 다 고아.



장례식장으로 달려가는 그 길엔 엄청난 비가 내렸다.



- 아버지 가시느라 슬퍼서 우시나 봐...

- 오늘 돌아가신 분들이 많은가 보네...



입관을 할 때도

발인을 할 때도

화장을 할 때도

하관을 할 때도


남자는 담담했다.



- 당신 별로 안 우네? 괜찮아?

- 나는 이미 내 맘에서 장례를 치렀어.

  그날, 다 울었어.



홀로 술을 마신 그 밤에 남자는 홀로 장례를 치르고 홀로 눈물을 흘렸었나 보다. 그래서 그토록 아침을 맞기가 힘들었었나 보다.

그 말이 나는 참... 슬펐다.


9년간 듣기만 하고 말하지 못했던 아버지는 자식들을 볼 때마다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생각을 하실 수는 있었을까?...

자신이 이승을 떠나가는 그날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단 한번 말할 수 있었다면,

마지막 그날에 아버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을까.



하... 그 말을 한 번만 들어 보고 싶다...



남자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끝끝내 우리는 아버지의 그 말과 생각을 알지 못하겠지만 한 번씩 추억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한평생 뜨거웠던 아버지를. 그분의 깊고 짙었던 사랑을.





아버님.

이제 가시는 그 길에 고통 없는 평안만이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늦게 다시 만난 어머님과 그곳에서 아름답기를 바라겠습니다.

저의 아버님으로 살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제 남편과 제 아이들의 뿌리여서 감사드립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 pixab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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