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람은 아니지만, 서울에 삽니다.
내 나이쯤 되면 슬슬...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내 주변을 보면 특히나 남자들이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고 그런 꿈을 더 많이 꾸는듯하다.
몇 살 쯤엔... 혹은 몇 년 후엔... 아이들이 대학을 가면... 퇴직 후엔... 나이 좀 더 들면... 이라면서 인생의 2막을 고향이나 고향 언저리에서 시작할 소망을 품곤 한다.
그들의 유튜브 알고리즘은 새 집 짓는 법이나 낡은 집 고치는 과정, 혹은 농사짓는 법이나 산속에서 문명의 도움 없이 홀로 살아가는 자연인들에 관한 것이며 실제로 고향의 빈 땅이나 빈 집을 알아보기도, 그곳에서 시작할 새로운 직업을 이래저래 생각해 보기도 한다.
( 한 때, 나의 짝꿍은 강원도에 있는 한옥 학교 1년 코스에 다니고 싶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 뜨흑...
아직도 그 꿈은 유효한듯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 보여서 인지 어쩐지 더 이상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고 있다. 대신 요즘은 도시 농부를 해야 한다며 농사짓는 법을 유튜브로 배우고 있다. 뜨헉... )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번잡한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왜 꼭 그곳이 태어난 고향이어야 할까. 그들에게 고향은 무슨 의미일까. 어떠한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것일까.
고향에서 받은 것, 혹은 진 빚이 많은 것일까?
강에서 태어났지만 큰 바다에서 살다 다시 강으로 돌아가 후손을 낳고 죽는 연어도 아닌데 왜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고향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왜 그런 회귀를 원하지도 꿈꾸지도 않는 걸까.
때때로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해도 그곳이 절대 고향일리는 없다고 단정하면서 말이다.
나는 나고 자란 고향에서 산 시간보다 서울에서 산 시간이 더 길다.
애초에 고향땅에 깊은 애정이 없어서 그곳을 떠나오는 것은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는 하루빨리 그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곳을 벗어나야지만 벗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 그렇고 그런 이유들이 내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공부는 서울에 있었고, 형제들 또한 모두 서울 땅을 밟고 살았던 터라 내가 서울로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이었고 별 저항이 없는 삶의 여정이었다.
( 아니, 별 저항이 없을 줄 알았는데 닥쳐보니 그것은 아니었다. 나의 서울행을 못마땅해하는 가족이 있었기 때문에 가기 전에도 가고 난 후에도 내내 불평과 불만을 들어야 했다. 그것도 아주 오래도록. )
의식주의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 가며 살아야 하는 두려움이나 혼자여서 생길법한 외로움 같은 건 없었다.
익숙한 것들이기도 했거니와 그런 걸 느낄 시간도 여유도 감정도 없었다.
다만 가끔 나를 먹먹하게 했던 것은, 혀 끝에서 맴돌지만 먹을 수 없는 고향의 음식, 전셋집을 구할 때마다 부딪히는 다른 문화, 보고 싶어도 쉽게 볼 수 없는 멀리 있는 친구, 모두가 빠르게 걷고 모두가 자기 할 말에 숨이 차던 도시의 풍경, 어떤 불합리한 일에도 내 편으로 나서 싸워줄 사람 없이 오로지 나만이 나의 철저한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뭐, 그런 것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득했던 일도 많았지만 그때는 젊었으니까, 어리고 용감했으니까 가능했던 일들일 것이다.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툴게 시작했던 이곳은 나에게 완전한 이방인의 도시였다.
하지만 여기에서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느끼고 현재를 걸어 미래를 함께 가기로 하면서 아내가 되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고 엄마가 되면서 숱한 소용돌이들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 더 어른이 될 수 있었다.
이곳에 뿌리내린 나의 울타리는 그렇게 하루치씩 얼고 녹고를 반복하며 견고해져 갔다.
살아온 시간의 양보다 살아온 밀도가 달랐던 것이다.
사전에서 '고향'을 검색하면 1.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 2.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 3.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 이라고 되어있는데 실제의 고향은 나에게 1번, 2번만 해당이 되었다.
지리적 의미의 고향은 지도 어딘가에 존재했지만 그곳이 반드시 나의 정서적 고향은 아니었던게지.
( 아. 그렇다고 3번이 서울인 것은 아니다. 3번은 나에게 따로 존재한다. )
아무튼 그런 과정들 속에서 나에게 이 도시는 이제 그 어느 곳보다 익숙하고 편안한 홈타운이 되었다.
피붙이 하나 없이 거대한 도시에 홀로 떨어진 자의 서러움이나 불안함은 꽤나 오래 느껴야 했지만 이제는 그것을 넘어 오히려 이곳의 편리한 인프라나 문화적 다양성을 누릴 수도 즐길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서울에서 서울 사람, 즉 서울이 고향인 사람을 만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주 드물게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것이 되려 신기할 정도여서 꼬치꼬치 살아온 동선을 묻기까지 했다.
그만큼 이곳은 먼 고향을 가진 사람들이 목적에 의해 모이고 필요에 따라 유지되며 그 덩치를 키워가는 곳이다.
그래서 사실, 서울의 품에 안겨 산다는 느낌은 느끼기 힘들다.
오히려 서울을 소비하며, 이용하며, 누리며 산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안락함 보다는 편리함이 우선하는 곳.
어느 것도 소중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어느 것을 더 강하게 취할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이겠지.
나는 지난 '서울생활자' 브런치 북에서 서울에 살면서 느낀 점들을 기록해 보았는데
이번 '서울소비자'에서는 서울에 살면서 누리는 일상들에 관해 기록해보려 한다.
이곳이 내가 애정을 품고 살아가는 나의 터전인 만큼 그 안을 내밀하게 잘 들여다보고 싶음이다.
잘 들여다보면 더 잘 알 수 있고 더 사랑할 수 있으니까 꽃을 보듯, 무지개를 보듯, 이 도시를 찬찬히 한번 바라봐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