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서

by EUNJIN


시장1_블로그_하늘채-.jpg < naver blog_ng2100 >



진주(晋州) 장터 생어물전(生魚物廛)에는
바닷밑이 깔리는 해다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銀錢)만큼 손 안 닿는 한(恨)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맞댄 골방안 되어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진주(晋州) 남강(南江)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추억에서 _ 박재삼



시장2_블로그_하늘채-.jpg < naver blog_ng2100 >



그이가 내게 시(時) 한편을 들려주었다. 어느 밤이었다.

오물오물 조그만 그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내장에서 출발해 목구멍으로, 다시 그의 말랑한 입술을 거쳐 흐릿한 밤, 노란 불빛 속으로 알알이 퍼지는 시어(詩語)들에 나는 그만 악- 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아찔, 현기증이 일었다. 고추냉이처럼 매운 어지러움이 머리를 훑고 난 후, 부지불식간에 얻어맞은 뇌 속이 바빠졌다.


내가 쓴 시(時)였을까...

언젠가 내가 써 놓고 잊고 있었던 것을 그이가 발견한 것일까... 뭐지 이것은...? 이 느낌은...?


그것은 어린 날의 내 이야기였다. 내 성장을 누군가 훔쳐보기라도 한 듯 지난한 내 삶이 통통하게 물오른 생선처럼 현재의 날 것이 되어 시(時) 안에서 펄떡펄떡 뛰고 있었다.

도둑질을 들켜버린 9살 마냥 명치 위 어디가 중력을 잃은 채 부유하기 시작하고 목 위로는 스멀스멀 열이 올랐다. 마주 앉은 그의 두런거리는 목소리 너머로 다큐멘터리 예고편 같은 흑백 무성 영화가 쓸쓸히 플레이되었다. 이내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은 늙은 여자의 일그러진 얼굴과 빈 하늘을 향해 꽉 잠겨버린 눈, 입술 새로 비어져 나오던 짐승 같은 울부짖음이 소리를 실은 고무 판화처럼 쿵하고 내려 찍힌다. 목 위로 올랐던 뜨끈한 열감은 이내 눈꺼풀 아래까지 배부르게 차올라 다시 머리 위로 솟아나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지독히도 가난했지만 가난하지 않았던 내 핏빛 삶의 영롱한 눈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

.

.

그 날의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돌고 돌아 끝끝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칼날처럼 쓰리고, 눈 뜰 수 없을 만치 찬란했던 그 날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풀어내지 않고서는

나는 태풍 속 부러진 나무처럼 영영 온전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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