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은 엄마

by EUN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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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윤이 나는 신경주 새 청사 밖에는 여름을 갓 빠져나온 햇살이 열기 없는 빛을 내려 보내고 있었다. 그 빛 사이로 홍해를 가르는 모세처럼 그녀가 걸어오고 있었다. 어제 본 듯 익숙하고 환한 모습으로 갈매기 눈을 하고서.

얼마만의 방문인지 모르겠다. 첫 독립, 첫 패배, 첫 사랑, 첫 월급. 처음으로 치르는 숱한 의식들을 연달아 치르며 고단한 청춘을 함께했던 열아홉 살의 친구는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고, 견고하지 못한 삶 속에서 휘청휘청 살던 나는 두 딸의 엄마가 되었다. 우리는 같은 해 결혼을 하고 같은 해 두 아이를 낳아 서로가 서로를 키득거리며 의아해했었다.


이야기는 숨 고를 틈도 없이 시작되고 이어졌다.

서울과 경주 그 먼 거리만큼, 만나지 못했던 몇 년의 시간만큼, 나누지 못한 우리의 이야기들은 끝을 알 수 없게 줄줄이 밀려있었다. 친구의 작은 아이를 자동차 뒷자리에 태우고 우리는 역사를 빠져나왔다.


“야... 얼마만이야. 똑같네. 똑같아. 너는 어째 살도 안 찌냐?”

“그러게 어제 본 것 같다. 그쟈.”

“뭐냐. 기집애... 전화 한번 하기가 그래 힘드냐? 난 또 뭐 죽은 줄 알았네.”

“진아... 하... 말도 마라. 내가 할 말이 많타. 윤이 치료받고 상담받으러 다니는 데가 일주일에 열한 군데다. 한 달에 들어가는 돈은 또 얼마게. 매일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랴, 치료비 벌으랴... 궁둥이 붙이고 가만히 앉아서 커피 한잔 마실 시간이 없다니까.”

“그렇게나 많이...? 보통이 아니네... 힘들겠다야.”

“찬찬히 얘기하자. 우리 밤에 석장 가볼래? 거서 한잔 하고 보문 가서 외박해삐까? 내, 윤이 아빠한테 오늘 밤에 내 찾지 마라 캤다.”

“진짜가? 야~ 림이 마이 컷대이”


쉼표 없는 우리의 대화 사이로 의미를 알 수 없는 아이의 낮은 소리들이 끊임없이 섞여 들었다. 친구는 틈틈이 룸미러로 아이를 살폈으며 나는 틈틈이 몸을 돌려 대꾸 없는 말을 건네고 손을 내밀어 온기를 전했다. 조수석에 앉아 옆으로 뒤로 연신 말을 주고받던 내가 더 이상 미루지 못하고 가방을 뒤적여 크고 작은 유리병들과 돌돌 말은 종이 백을 꺼내어 놓았다.


“뭐고?”

“청귤, 얼음 넣고 탄산수에 타 마셔. 아주 맛있어. 이번 여름에 담은 거야. 우리 집에는 1년 내내 이거 없음 안 돼. 애들이랑 남편이 어찌나 좋아하는지... 올해는 50kg이나 담았다니까. 그리고 이건 쨈이다. 블루베리랑, 딸기. 어제 후다닥 만들었는데 급하게 만들어서 맛이 어떨지는 모르겠네. 이거는 육포. 봄이가 이걸 어찌나 좋아하는지. 파는 거는 쳐다도 안 본다니까? 건강한 재료로 만든 거니까 맛이나 봐 봐. 애들 먹이고.”

“야...... 진이... 대단하대이.”


아이처럼 짜장면을 좋아했던 친구, 가수 김원준의 사진을 부적처럼 모으고 병아리 같이 샛노란 옷을 입고 다녔던 친구, 우리만의 삐삐 암호를 정하고 우정 반지를 나누어 끼며 풀리지 않는 연애사로 소주를 들이키던 푸르고 어렸던 우리는 이제 내 입에 맛난 음식을 슥슥 닦은 손으로 집어 네 입에 넣어 주고 싶을 만큼, 기껍게 만든 음식을 깨어질까 엎어질까 걱정하면서도 아등바등 싸들고 몇 시간을 내려갈 만큼, 맛으로 마음을 내어주고픈 어른이 되어있었다.


“우리 애들은 내가 만든 청귤 청이랑 육포 없음 안 돼. 알지? 나 고기 안 먹는 거. 나는 먹지도 않는 육포를 절기마다 만든다니까. 썰고 핏물 빼고, 장 달이고, 양념하고, 말리고, 뒤집고, 뒤집고, 또 뒤집고... 어휴... 일이 어찌나 많은지. 힘들어 죽겠다니까. 그래도 어쩌냐. 애들이 너무 좋아하니까. 잘 먹으니까. 또 그 먹는 거 보는 맛에. ‘엄마, 육포 언제 해줄 거야? ’ 그러면 안 할 수가 없어요. 신랑이랑 둘이서 이틀 내내 만든다니까. 아마 우리 애들은 나 죽어도 내가 해준 육포로 나 기억할 거야.”


운전대를 잡고 말을 받아주던 친구에게 짧은 침묵이 스쳤다. 그리고는 말했다.


“음식으로 엄마를 기억한다... 음식으로... 아... 진아. 정말 그렇네. 정말. 우리 아이들은 나를 무슨 음식으로 기억할까...”


무심코 뱉은 말에 더해진 친구의 말. 그 말이 나를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

내 엄마는 나에게 어떤 음식을 해주었을까... 내 엄마의 한 그릇은 무엇일까... 내 엄마를 기억하게 하는 혀끝의 맛과 코끝의 냄새는 무엇일까...

자동차는 어느새 충효동을 지나 황남동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대릉원을 끼고돌자 눈앞에는 익숙한 이름의 쌈밥집들이 여전히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간판 위에 새겨진 주인의 이름들...


엄마는 요리를 할 줄 모르는 여자였다. 엄마는 살림도 할 줄 몰랐고, 살갑게 아이를 기를 줄도 모르는 여자였다. 학교를 다녔던 시절에 나는 단 한 번도 도시락을 싸가 본 적이 없었고, 소풍이나 운동회에 김밥을 가져 가 본 적도 없었다. 집에서 엄마의 밥상을 받아 본 적도 거의 없었기에 가족끼리 둘러앉아 때에 맞춰 밥을 먹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자랐다. 그저 식사는 곯은 배를 채우는 일인 줄로만 알았다. 학교에서 돌아와 배가 고프면 냄비에 김치와 멸치와 물과 식은 밥을 올려 연탄불에 푹푹 끓인 김치죽으로 허기를 채웠고, 귀퉁이가 썩어나간 과일로 끼니를 대신하기도 했다. 몇 날 며칠 같은 것을 먹다 지겨워지면 전기밥솥에 라면을 죽처럼 끓여 먹기도 했다. 가난하진 않았지만 가난하게 살았던 날들이었다.


사실 엄마는 요리를 할 줄 모른다기보다 요리를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하루는 새벽 4시에 시작했고, 다음날 새벽 1시에 끝이 났다. 그녀가 집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하루 3-4시간이 전부였다. 나머지 시간은 점포도 없는 시장바닥에서 과일이나 채소나 생선을 팔면서 보냈다. 은빛 별이 빛나는 까만 시간에 집을 나가 다시 은빛 별이 영롱해지는 까만 시간이 되면 돌아왔다. 기절하듯 잠이 드는 그녀에게는 아빠 잃은 일곱의 자식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식들에게 뜨거운 밥을 지어 먹이거나 단정하게 집안을 가꾸거나 살뜰하게 아이들을 챙기고 돌보는 것이 아니라 먼지와 고성이 오가는 시장에서 다른 이의 엄마들에게 제 식구 먹일 것들을 파는 일이었다. 그들을 상대로 한 푼이라도 더 벌고, 그렇게 번 돈을 차곡차곡 모아, 아이들이 머무를 집을 얻고, 아이들이 맬 가방을 사고, 아이들이 갈 학교의 학비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따뜻하고 정갈한 밥상을 직접 내어주지는 못했지만 언제나 배고프지 않게, 춥지 않게, 가난하지 않게, 병들지 않게 만들어주려고 애썼다. 하루하루 기력을 다해 그녀는 젊은 날과 늙은 날의 경계도 없이 매일을 살아내었다.

그렇게 살았던 엄마의 맛은 짜고 시고 달고 맵고, 언제나 균형을 잃은 채였다. 맛있는 것을 먹을 줄도 만들 줄도 몰랐던 무지와 경험의 부재였다. 그런 엄마도 가끔은 요리를 하셨는데 그건 바로 나를 살리기 위한 요리였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하고 입원과 수술이 잦았던 나는 특별한 큰 병은 없었지만 소소하고 잦은 병을 달고 살았는데 그런 나를 그녀는 아주 애달프게 여겼다. 학교에서 쓰러져 친구들에게 업혀올 때마다 그녀는 장사를 접고 달려와 깊게 파인 주름 사이로 슬픔을 삼키며 내 곁에서 음식을 지었다.


살아있는 미꾸라지에 굵은소금을 탁 쳐 넣으면 그 녀석들, 그렇게 요란할 수가 없었다. 그것들이 기운을 다 잃을 때까지 뚜껑을 덮어두고 엄마는 마당에 퍼질러 앉아 채소를 다듬었다. 토란대, 고사리, 숙주, 얼갈이, 대파, 그리고 방앗잎... 들어가는 채소도 가지각색이었다. 손질한 채소를 데치고 맥이 빠진 미꾸라지도 깨끗이 씻어 삶고 나면, 다음으로 중요한 단계가 남아있었다. 미꾸라지를 뼈까지 먹을 수 있도록 가늘고 부드럽게 갈아내는 일이었다. 나는 아직도 커다랗고 빠알간 소쿠리에 미꾸라지를 엎어 맷돌을 갈 듯 손으로 일일이 문질러 미꾸라지를 갈아내던 엄마의 모습을 기억한다. 나는 그 모습이 꼭 주문을 외는 것 같다고 여겼다. 한 번 갈아진 것을 다시 소쿠리에 부어 갈고, 다시 갈고, 또다시 갈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의 엉덩이와 등허리가 아려올 때까지 그것은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제 새끼를 살려내기 위한 그녀의 기도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몇 시간을 들여 만들어낸 한 그릇의 추어탕은 나에겐 밥이고 약이었으며 사랑이었다. 그 안에 녹아있는 어미의 사랑을 내가 어찌 가늠할 수 있겠느냐마는 뜨끈하게 끓여낸 맑고 칼칼한 그 한 그릇을 먹고 나면 명치부터 차오르는 포만감에 나풀대는 내 영혼도 튼실하게 살이 오르는 느낌이었다. 집안에는 향긋한 방아 향이 넘실댔다. 탕 위에 제피나 산초가루를 뿌리면 그 오묘한 향은 매력을 더했다. 경상도식 추어탕은 남원이나 원주식처럼 걸쭉한 것이 아니라 국처럼 맑고 개운한 것이었는데 들통 가득 끓여진 그것은 몇 끼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열아홉에 고향을 떠나올 때까지 엄마가 끓여주던 추어탕은 몸은 약했지만 비위가 약해 못 먹는 것이 많았던 나를 지탱해준 유일한 보양식이었고, 곱절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보양식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 음식은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고향을 떠나왔고, 형제들 또한 그곳을 떠났으며, 엄마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렸다. 평생을 솜씨 없던 엄마가 정말 맛있게 끓여내던 추어탕, 더는 먹고 싶다고, 해달라고 말할 수 없지만 그녀가 남겨 주고 간 향긋한 추어탕의 냄새는 내 기억 속에 박제되어 사는 내내 나를 뜨겁게 할 것이다.

내 아이에게 청귤 청이나 육포는 어떤 의미일까. 아이가 먹고 싶은 것은 음식일까. 음식으로 확인되는 사랑일까.

그때의 나와 같은 나이를 살고 있는 아이. 이 아이의 배고픔은, 허기는, 여림은... 그 음식들로 뜨겁게 채워질 수 있을까.


“엄마, 육포 언제 해줄 거예요?”

“먹고 싶니?”

“안 먹은 지 너무 오래되었어요. 생일 선물로 육포를 해주면 안 될까요?

“그래. 생일 선물로 육포도 주고, 다른 것도 줄게”


멀리서 추어탕의 알싸한 향이 밀려와 가만히 앉은 나를 툭툭 건드린다.

“엄마, 추어탕 먹고 싶어요... 엄마가 해주는 추어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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