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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내를 비추는 판화]

시아노타입, 태양빛으로 드러나는 본질

by 김도형
시아노타입.png



사람들이 판화라고 하면 흔히 ‘무조건 판을 만들어 찍는 것’이라는 일차원적인 인식을 갖기 쉽다. 하지만 판화의 세계는 그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섬세한 기법들로 이루어져 있다. 재료와 방법에 따라 완전히 다른 질감과 표현이 가능하며, 그 안에는 회화와는 또 다른 깊이와 이야기의 층위가 존재한다.


오늘 소개할 판화 기법은 ‘시아노타입(cyanotype)’이다. 파란 바탕 위에 하얀 형체가 떠오르는 이 판화는 마치 사물의 엑스레이를 찍은 듯한 인상을 준다. 어떤 물체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듯한, 속살을 비추는 시선. 이 같은 시각적 특성은 시아노타입이 태양빛을 활용해 물체의 외형을 드러내는 방식 때문인데, 빛에 노출된 시간만큼 사물의 윤곽과 구조가 평면 위에 남겨진다. 결국 이 기법은 단순히 ‘표면’을 찍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적인 형태, 뼈대를 포착해낸다.


그래서 시아노타입은 여타의 판화와는 조금 다른 감각을 전달한다. 그것은 어떤 것을 ‘찍어낸다’기보다는, ‘비춰낸다’는 느낌에 가깝다. 마치 무언가의 내면을 살짝 열어보는 듯한 경험을 준다. 나는 이 시아노타입 작품을 보며 문득 질문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얼마나 타인에게 드러내고 있을까?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본질을 세상에 비추고 있는가?


태양빛 아래에서 사물의 형태가 진하게 혹은 희미하게 남듯, 우리 역시 사회와 관계 속에서 자신을 어느 정도까지 노출하고, 그만큼만 보이게 된다. 시아노타입은 그런 점에서 단순한 예술 기법을 넘어,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은유처럼 느껴진다. 빛이 닿은 만큼만 기록되는 푸른 감광지 위에, 우리는 매일 조금씩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판화 #시아노타입 #cyano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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