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가 새롭게 시도하는 작가 권리 보호 제도
미술계에서는 작가의 권리를 보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새로운 제도로서 ‘미술품 추급권(Droit de Suite)’의 도입을 논의 중이다. 이 제도는 작가가 한 번 판매한 작품이 그 이후 다시 거래될 때마다, 일정 비율의 수익을 작가에게 다시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는 작가가 생계와 작업을 병행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법적 보호 장치로서, 직업적 정체성과 경제적 지속성을 함께 지켜주는 개념이라 볼 수 있다. 작품의 시장 가치가 상승하더라도 그 수익이 작가에게 전혀 돌아가지 않는 기존의 구조를 보완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이처럼 의도는 훌륭하더라도,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추급권을 도입하기란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동반한다. 단순히 법을 제정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도 실행의 전제 조건은 명확한 시스템 구축이다.
가장 먼저, 모든 작가의 정보와 계좌, 작품 거래 내역이 일원화된 플랫폼 또는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어야 하며, 이는 곧 금융 실명제 수준의 미술 거래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가능하다.
또한 모든 미술 거래가 ‘신고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도 현실적 장벽이다. 개인 간 거래, 갤러리 외의 비공식 유통망, 또는 작가 정보를 알 수 없는 작품들은 신고 누락 가능성이 높아, 이 제도의 실효성을 낮출 수 있다. 특히 미술 시장에서는 아직도 많은 거래가 ‘비공식적’이고 ‘사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모든 흐름을 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방대한 구조개편이 수반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해외에서도 이미 도입된 국가들이 있으나, 모든 작품에 적용하기엔 한계가 존재한다. 작품 가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몇십만 원대 거래부터 수억 원에 이르는 고가 거래까지 동일 비율로 추급권을 적용하면 거래 자체에 부담을 주거나, 과도한 행정 처리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일부 국가에서는 최소 금액 이상 혹은 최대 한도를 정해 탄력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제도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문화적 당위성의 확산이다. 단지 법률 조항만이 아니라, “왜 작가는 재판매에서 정당한 몫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공감대를 시장과 국민에게 형성시켜야 제도가 살아 움직일 수 있다.
나아가 세무 시스템과 연동된 자동 지급 구조, 작가-작품-거래 추적이 가능한 유통 플랫폼,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는 데이터 등록 체계가 마련되지 않는 한, 추급권은 현실화되기 어려운 선언에 머무를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단순히 수익 배분을 넘어서, 창작자의 권리가 처음 판매 이후에도 유효함을 인정받는 상징적 전환이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시장에서 어떤 여정을 걷고 있는지를 알 수 있고, 그 여정 속에서 최소한의 보상과 존중을 받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제도의 핵심이다.
미술 생태계를 보다 공정하고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발걸음.
추급권 제도는 그 시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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