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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왜 영화처럼 한줄평이 불가능한가]

체험의 차이, 이해도의 차이, 그리고 공감의 부재

by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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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영화를 보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거나,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를 기호로 표현하곤 한다. 더 나아가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영화가 좋았는지 나빴는지를 평가하기도 한다. 특히 영화에서는 ‘한줄평’이라는 형식이 일반화되어 있다. 이는 전문가나 영화평론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참여하며, 때로는 일반 관객이 남긴 짧은 평이 수준 높은 비평처럼 기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한줄평 문화가 미술에서는 불가능한 것일까?


영화는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이 많다. 5천만 인구 중 영화를 한 편도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만큼 보편적인 체험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영화는 기승전결, 스토리텔링, 미장센 같은 법칙들이 대중 속에 자연스럽게 학습되어 있어,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최소한의 기반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


더 중요한 점은 영화라는 매체가 반복적 경험을 통해 비교 기준을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여러 편의 영화를 보고, 좋고 나쁨을 구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험치를 축적한다. 그렇기에 영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한 줄평으로 표현할 수 있고, 그 평가가 다른 사람들과 토론의 기반이 된다. 결국 영화의 법칙과 이론을 각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어 있으며, 이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관객층도 충분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미술로 옮기면 상황은 달라진다. 미술은 대중적 수요와 공급이 부족하다. 기본적인 이해도와 감상 경험이 희박하며, 반복적 체험을 통한 비교 기준도 충분히 쌓이지 않는다. 따라서 작품에 대해 짧게 평가를 내리거나 그 평가를 공유했을 때, 이를 공감하고 이해해 줄 대중적 기반이 턱없이 부족하다.


또한 미술 비평은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접근성이 여전히 제한적이다. 비평의 양 자체도 영화에 비해 현저히 적기 때문에 사회적 공감대가 쉽게 형성되지 않는다. 결국 미술이 영화처럼 ‘한줄평’으로 소비될 수 없는 이유는 단순히 장르의 차이가 아니라, 경험의 축적·이해도의 격차·공유 가능한 언어의 부족에 있다.


미술이 영화처럼 한줄평의 문화를 가지려면, 무엇보다도 경험의 양이 늘어나야 한다. 또한 영화의 플롯이나 장치에 대한 기본 이해처럼, 최소한의 미술 조형 요소에 대한 인지가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좋다’는 평가의 기준이 일반 대중에게 습득되고, 그 기준을 통해 판단하고 구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야만 대중이 스스로 평가를 내릴 수 있고, 동시에 비평가의 의견에 수긍하며 토론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결국 한줄평은 단순한 문구가 아니라, 경험과 이해의 토대 위에서 비로소 공존할 수 있는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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