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예술 사이, 사라져가는 비평의 자리
모든 예술 분야에는 평론가가 존재한다. 각 카테고리마다 일종의 전문가로서, 작품의 좋고 나쁨을 평가하고 방향성이나 주제를 검토하며, 매체와 방식, 디테일 속 대중이 미처 감지하지 못한 부분을 짚어내는 역할을 한다. 좋은 부분은 부각해 사회적 주목을 이끌고, 때로는 관심을 배가시키며 예술 분야와 산업 자체를 더 윤활하게 돌아가게 만드는 것도 평론가의 몫이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평론가의 역할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다. 특히 미술에서는 ‘비평’이라는 영역이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이 들 정도로 실질적인 비평을 찾아보기 어렵다. 예술성 중심의 교육과 검증된 작품에 대한 숭배, 예찬은 넘쳐나지만, 상업적 장에서는 판매를 위한 홍보 언어만 반복된다. 결과적으로 비평은 사회적 공론장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비평의 본래 역할은 단순히 감상을 돕는 것이 아니다. 대중에게 기준을 제시하고, 좋은 작품을 더욱 부각시키며, 부족한 작품을 지적해 전반적인 수준을 끌어올린다. 이를 통해 컬렉터와 대중이 가치의 기준을 공유하게 되고, 예술 시장과 문화가 투명해지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지금은 자본의 압박 때문인지, 혹은 예술성의 도도함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실제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비평의 부재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평론가는 점점 줄어들고, 비평 글을 돈을 주고 읽는 독자층도 사라지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비평가와 평론가가 생존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이는 단순히 사회 시스템의 문제만이 아니다. 평론가 스스로도 비평을 비평답게 쓰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미술관과 갤러리라는 위계적 풍토 속에서 가치 기준과 가격 기준이 명료하게 정리되지 못하다 보니, 상업적 현장과 실질적인 감상과 이해와는 동떨어진, 어려운 전문적 단어로 가득한 비평만 난무하는 시대가 된 것이기도 하다.
문화예술이 사회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대중이 납득할 수 있고 상업적 가치와 예술적 기준이 동시에 반영된 명료하고 선명한 비평이 필요하다. 평론가는 시대 상황과 시장 구조, 그리고 조형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비평을 써야 한다. 우리는 팔기 위한 주례사적 비평이 아니라, 때로는 아플지라도 더 나아갈 수 있는 비평을 받아들이고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예술의 건강한 성장을 가능케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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