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이 구분하지 못하는 시대, 예술은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AI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예술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음악, 그림, 영상 등 다양한 영역에서 AI가 인간의 작업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시대에 우리는 이미 들어섰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어떤 이는 인간의 존엄성과 창조적 본질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이는 AI의 효율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며, 또 어떤 이는 시장의 흐름 속에서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이 세 가지 시각은 모두 일리가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있다. AI가 만든 작품과 인간이 만든 작품을 대중이 구분하지 못하는 순간, 그 차이는 사실상 의미를 잃는다. 인간 장인이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작품조차 AI가 생산한 결과물과 같은 범주로 소비될 위험이 있다. 결국 예술의 가치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인정신은 여전히 예술이 살아남을 수 있는 근거다. 장인은 비효율적이고 고지식한 과정을 고집한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긴 시간을 들여 완성된 결과물은 단순한 산출물이 아니라 과정의 기록이다. 우리는 왜 이 비효율을 존중하는가? 그것이 바로 인간만의 당위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 과정을 시대착오적 고집으로 치부할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존엄성을 지탱하는 근거로 받아들일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AI의 산출물은 이미 기성품과 맞먹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지나치게 완벽하기 때문에 인간의 불완전함 속에서 드러나는 독창성이 오히려 강조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대중이 AI와 인간의 결과물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은 공을 들인 작품이라도 동일한 수준으로 평가될 수 있다. 결국 예술의 가치 기준은 ‘가격’으로만 매겨질 위험이 크다. 많은 담론 속에서 ‘가치’라는 단어가 반복되지만, 실제 거래와 소비의 순간에는 여전히 가격이 우선시된다. 이는 예술의 본질과 시장 논리 사이의 괴리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질문을 던져야 한다. AI가 동일한 주제를 인간보다 더 빠르고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인간의 예술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작품을 가격으로 평가할 것인가, 아니면 과정과 의도를 포함한 가치로 평가할 것인가? 예술의 본질은 단순히 소유나 결과에 있지 않다.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왜 존재하는가를 이해하는 과정 속에 있다.
대중이 구분하지 못하는 시대일수록 장인정신은 단순한 기술적 차별성이 아니라 예술이 예술로 남기 위한 윤리적, 철학적 근거가 될 수 있다. 결국 AI 시대의 예술은 인간의 손길이 가진 ‘불완전하지만 당위적인 과정’을 얼마나 존중하고 재해석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우리는 가격을 넘어 가치로, 결과를 넘어 과정으로 다시 질문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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