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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에서 이미지 소비에 대하여]

이미지의 생명 주기와 작품의 지속성

by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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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상이나 형태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구상 회화의 경우, 작가들은 ‘이미지 소비’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이미지와 영상을 쉴 새 없이 보고 흘려보내는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을 ‘활용’이 아니라 ‘소비’라고 부르는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 이미지를 한 번 보고 넘겨버리고 다시 찾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말하는 이미지 소비란, 관람자가 특정 이미지에 반응하고 흥미를 느끼는 역치와 그 지속 시간이 일정한 총량을 가진다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팝아트의 경우 현실에서 익숙하게 본 이미지나 상징을 차용하거나 오마주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관람자는 작품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며 즉각적인 흥미를 느낀다. 하지만 반대로, 익숙함이 너무 강해 금세 질려버리거나 흥미를 잃는 경우도 발생한다. 바로 이런 현상이 이미지 소비다.


조금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미지 소비가 끝나고 나면 작품의 수명도 위험할 수 있다. 특히 오마주나 패러디에 의존하는 작업일수록 이 문제는 더욱 예민하게 작용한다. 수많은 이미지가 실시간으로 생성되고 사라지는 지금, 이미지 소비의 기준은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결정되는 것일까.


첫째, 유사성이 높을수록 이미지 소비 속도는 빨라진다. 팝아트처럼 범주화된 이미지들은 이미 대중의 시각에 익숙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노출과 소비가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반면, 개성이 뚜렷하거나 쉽게 접하기 어려운 스타일의 작업은 유사 이미지가 적어 소비 속도가 느리고 지속 기간도 상대적으로 길다.


둘째, 현대인은 너무 많은 이미지를 접하면서 이미지에 머무르는 시간이 극도로 짧아졌다. 빠른 인식과 빠른 피로가 반복되면서 전체적으로 이미지가 소비되는 총량과 노출 기간도 단축되었다. 유사 이미지가 많을수록 대중의 흥미는 더 빨리 식고, 그만큼 작품의 수명도 짧아지는 경향이 강해졌다.


작가 입장에서 이는 특히 뼈아픈 문제다. 하나뿐인 작업을 만들어낸다는 자부심이 있더라도, 이미지 소비 속도가 빠르면 동일한 시리즈나 형식의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기간 자체가 줄어든다. 결국 상업성과 예술성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로 다가온다.


이미지 소비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이미지 선택 단계에서부터 신중해야 한다. 자신의 개성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시각 언어를 구축해야 하며, 단순한 유머나 비판, 반복되는 시각적 상징에만 기대는 작업은 피하는 것이 좋다. 이미지의 수명이 짧아질수록 작품 전체의 생명력도 단축되기 때문이다.


이미지 소비는 현대 작가들에게 숙명처럼 따라붙는 주제다. 이미지가 너무 빠르게 생성되고 사라지는 시대 속에서,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어떻게 차별화하고 지속성을 확보할 것인가가 점점 더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이미지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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