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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성향과 새끼손가락 부담의 상관관계]

언어의 구조가 신체의 움직임을 결정할 때

by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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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새끼손가락 통증이 심해졌다. 키보드를 칠 때마다 통증이 밀려와 처음엔 단순 피로감이라 생각했지만,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사람마다 키보드를 치는 방식은 다르다. 하지만 각 손가락의 사용 빈도는 그 사람의 직업이나 언어적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문장을 쓰거나 메일을 작성할 때 한글과 영어를 섞어 쓰고, 특수문자나 URL, 괄호, 기호를 자주 사용한다. 이 모든 요소가 새끼손가락에 반복적인 부담을 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예를 들어, 이름 표기에서 ‘Mr. Kim’을 입력할 때 왼쪽 새끼손가락은 Shift 키를 두 번 누르고, 오른손은 M과 K를 입력한다. 이 과정에서 새끼손가락과 검지가 교차하며 긴장한다.

또, URL을 입력할 때는 슬래시(/)와 마침표(.)를 반복적으로 입력한다. 이 역시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중심이 된다.

문장을 마무리할 때 사용하는 이모티콘이나 콜론(:), 괄호() 역시 Shift 키와 새끼손가락의 협응을 필요로 한다.


새끼손가락은 해부학적으로 독립성이 가장 약한 손가락이다. 약지와 함께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고, 반복적 사용에 쉽게 피로가 누적된다. 그럼에도 키보드에서는 Shift, Enter, Ctrl, 한/영 전환 등 중요한 기능키 대부분을 담당한다. 이 구조적인 한계는 연골이나 건에 미세한 손상, 건초염 같은 통증으로 이어지기 쉽다.


언어별로 봐도 새끼손가락의 부담은 다르다. 영어권에서는 모든 대문자와 특수문자 입력이 Shift 조합에 의존하기 때문에, 장시간 작업할수록 왼쪽 새끼손가락의 부담이 크다. 반면 한국어는 자음·모음 조합 구조상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한/영 전환과 Backspace, 조사 수정 등에서 오른쪽 새끼손가락이 자주 개입한다.


한글과 영어, 기호를 혼용하는 환경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술, 디자인, 국제 업무처럼 문장 안에 괄호, 세미콜론, 콜론, 슬래시, 대문자 등이 자주 등장하면 좌우 새끼손가락이 동시에 혹사당한다. SNS에서 짧은 문장과 이모티콘을 자주 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결국 언어의 구조와 표현 습관은 신체의 움직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한국어 중심의 문체는 중앙 키에 집중되어 있지만, 영어와 기호 중심의 문체는 Shift와 기호 키가 몰린 끝단으로 손의 부담을 옮긴다.

즉, 우리의 언어 성향이 새끼손가락의 피로도를 결정한다는 말이다.


나는 이 현상이 단순한 신체 피로를 넘어, 언어와 신체의 관계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떤 단어를 자주 쓰는지, 어떤 문체를 선호하는지는 결국 손끝의 움직임과 습관으로 드러난다. 언어의 성향이 신체의 리듬을 만들고, 신체는 다시 사고의 흐름을 바꾼다.


새끼손가락의 통증은 어쩌면, 내가 어떤 언어로 사고하고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작은 신호일지도 모른다.


#언어성향 #손가락 #언어적사고 #행동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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