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역설, 인간의 편리함이 다시 노동으로 되돌아오는 과정
냉장고와 세탁기가 발명되었을 때, 인류는 처음으로 ‘시간의 여유’를 얻었다. 그들은 우리의 손에서 반복된 노동을 덜어주었고, 우리는 남은 시간을 여가로 채울 수 있었다. 삶의 리듬이 바뀌고, ‘노동’과 ‘휴식’의 경계가 생겨났다.
하지만 지금의 인공지능은 다른 형태의 편리함을 약속한다. 단순한 시간 절약이 아니라, 사고의 일부를 대신해주는 편리함이다. 문제는 그 편리함의 대가다. 냉장고나 세탁기는 한 번 사면 끝이었지만, AI는 지속적인 구독과 업데이트, 학습 비용을 요구한다. 우리는 시간을 벌기 위해 기술을 도입했지만, 그 기술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일해야 한다.
AI가 인간을 대신해주는 시대가 오면, 남는 시간은 과연 ‘여가’가 될 수 있을까?
여가란, 인간이 주체적으로 선택한 비생산적 시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여가는 플랫폼 속에서 소비되고, 또 다른 알고리즘의 일부로 흡수된다. 우리가 얻은 것은 자유가 아니라, 사용권이다.
최근 논의되는 ‘기본소득’은 이 아이러니의 해답처럼 보이지만, 그 또한 모순을 안고 있다. AI가 모든 것을 대신한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소득을 얻을까?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는 AI가 모두 유료라면, 그 돈은 결국 누가 벌어야 하는가?
결국 우리는 더 열심히 일해서 AI를 사고, AI는 다시 우리의 일을 대신하며, 그 대가는 또다시 AI 개발사에 돌아간다.
냉장고와 세탁기가 인간을 해방시켰다면, AI는 인간을 다시 노동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기계가 만든 여유는 이제 기계의 유지비로 환원된다. 모든 사람이 AI를 사용할 미래가 올 때, 우리는 과연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을까.
그때 우리의 노동은 더 이상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너’를 위한 노동이 되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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