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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의 딜레마]

AI는 생겼지만, 상상할 시간은 사라졌다

by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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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라는, 상상력을 구현해낼 수 있는 도구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등장했다. 누구나 몇 줄의 글만 입력하면 그림이 완성되고, 복잡한 작업을 대신 처리해주는 시스템이 손에 들어왔다. 창작의 문턱이 낮아졌고, 결과물의 질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창작을 하지 못하고, 상상조차 덜 하게 되었다. 심지어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 앞에서 멈칫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그 이유는 단순히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창작 욕망을 억눌렀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 도구를 제대로 사용할 시간조차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바쁘게 살아간다. 눈을 뜨자마자 이메일과 메시지를 확인하고, 업무를 처리하고, 틈틈이 새로운 정보를 소비하다 보면 어느새 밤이다. 하루를 마치며 드는 감정은 ‘오늘도 무언가 해냈다’는 충족감보다는 ‘아직도 해야 할 것이 남았다’는 조급함에 가깝다. 마치 숙제를 남겨놓은 학생처럼 잠에 드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AI를 비롯한 새로운 기술은 분명히 문명의 진보다. 하지만 동시에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고 활용하기 위한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수많은 신기술이 등장하고, 각종 플랫폼과 툴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들은 사회적 생존과 직결된 도구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본능적으로 따라잡아야 할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그 존재를 인지하는 데 대부분의 에너지를 소진하고, 정작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거나 응용할 시간과 여유는 사라진다.

이제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지만, 우리는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대답할 틈조차 없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삶의 구조에 대한 문제다. 루틴에 길들여진 일상, 반복되는 업무, 창의성보다 속도와 효율이 우선시되는 환경은 새로운 도구를 마주한 우리에게 상상력을 발휘할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마치 날개를 얻었지만 어디로 날아가야 할지 모르겠고, 심지어 왜 날아야 하는지도 흐릿해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AI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전거 타기에 비유되기도 한다. 처음엔 낯설지만 일단 시도해보면 금세 익숙해지고, 그때부터 진정한 가능성이 열린다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자전거가 어디로 향하는지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마냥 밝고 희망적인 미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에게는 그 여정이 어둡고 불안정하며, 방향을 잃은 채 방황하는 경험일 수 있다.


결국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을 마주한 우리의 태도와 환경이다. 상상력은 도구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 여유, 방향 감각, 그리고 ‘의지’에서 비롯되는 능력이다. 우리는 이제 단순히 AI를 어떻게 쓸 것인가를 넘어서, 왜 쓰고 싶은가, 무엇을 위해 쓰고 싶은가를 묻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진짜 인간의 몫이다.


#상상력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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