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을 때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림을 그린다. 단어가 선을 이루고, 문장이 면이 되어 머릿속에서 공간과 인물이 만들어진다. 특히 소설의 도입부, 배경이나 인물의 묘사가 이어질 때면 나는 마치 그 소설의 세계에 직접 들어가 있는 것처럼 하나하나를 상상하며 따라간다. 이러한 몰입의 방식은 오래전부터 내가 소설을 대하는 태도였고, 상상을 텍스트 위에 덧입히는 작업은 문학을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경험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작업이 조금 달라졌다. AI의 발전, 특히 텍스트를 이미지로 변환하는 기술이 급속히 정교해지면서, 내가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장면을 실제 시각 이미지로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내가 읽은 문장을 AI에 입력하면, 그것이 그림으로 ‘답변’된다. 놀랍기도 하고, 때로는 충격적이기도 하다. 내가 그렸던 이미지와 AI가 보여주는 이미지 사이의 간극을 비교하면서 상상의 범위를 점검받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아직 읽지 않은 소설이라면, 미리 장면을 시각화해보며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AI를 통해 소설을 시각화하는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그 시작점으로 선택한 작품은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이다. 방대한 분량과 복잡한 구조, 상징으로 가득 찬 이 텍스트는 공간적 이해가 무척이나 어려운 작품이다. 나조차도 읽으면서도 구조를 머릿속에 세우는 데 많은 시간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AI의 도움을 받아 지옥의 9개 원을 하나하나 시각화해보는 시도를 했다.
신곡은 인간 영혼의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서사시로, ‘지옥’, ‘연옥’, ‘천국’의 세 단계로 나뉜다. 그중 ‘지옥편’은 인간이 길을 잃고 죄의 실체를 인식해가는 여정의 시작이자, 단테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지구 중심을 향해 내려가는 길이다. 죄의 종류와 무게에 따라 9개의 원으로 나뉘며, 각 공간에는 그에 해당하는 죄인들이 형벌을 받고 있다. 애욕에 휩싸여 폭풍에 날리는 자들, 탐욕에 지친 이들이 무거운 짐을 서로 밀어대는 곳, 나태한 자들이 강물 밑에 잠겨 있는 지옥까지 각 원은 철저히 논리적이고 상징적인 형벌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텍스트를 이미지로 시각화한다는 건 단순한 묘사의 재현을 넘어서, 구조적 이해와 상상력의 재구성을 의미한다. 특히나 지옥의 중심에서 루시퍼가 세 개의 입으로 배신자들을 씹고 있는 장면처럼, 종교적·상징적 해석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지점은 AI에게도 매우 복잡한 지시사항이 된다. 그러나 오히려 그 틈에서 인간의 상상과 기계의 생성 사이에 어떤 새로운 미적 가능성이 피어난다.
AI는 인간처럼 감정과 윤리를 기반으로 장면을 상상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계적으로 데이터를 조합하고, 알고리즘에 따라 이미지를 산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물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보게’ 만든다. 문학이 본래 지닌 해석의 유동성과, AI가 생성해내는 시각적 결정성 사이에서 나는 끊임없이 질문하게 된다.
상상의 보조 도구로서의 AI, 감상의 증폭 장치로서의 시각화 작업은 내가 문학을 새롭게 읽고, 다르게 경험하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단테의 지옥이 그랬듯, AI로 구현된 또 다른 ‘지옥’은 결국 나의 정신 안에 새로운 구조를 만든다. 그것이 공포든, 경탄이든, 혹은 경계든 간에.
#소설시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