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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보다 상상력이 앞서있던 시절]

기술이 상상을 추월한 지금, 우리는 무엇을 상상할 수 있는가

by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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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인간은 기술이 따라오지 못할 상상력을 가졌다. 손으로 그린 우주선, 미니어처로 만든 외계 도시, 초현실적 장면을 구현하려 애쓰던 특수효과의 시대, 상상은 늘 기술보다 앞서 있었다. 스타워즈 오리지널 시리즈의 프리퀄(1, 2, 3편)이 기술적 한계로 인해 오히려 나중에 제작되었다는 이야기는 이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반대다. 기술이 상상력을 초과하는 시대다. 우리가 생각해내기도 전에, AI는 이미 그 장면을 그려낸다. GPT는 미처 다듬지 못한 문장을 구조화해주고, 미드저니나 스테이블 디퓨전 같은 생성형 AI는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보다 더 완성도 높은 시각적 결과를 10초 만에 내놓는다. 인간이 생각하기도 전에, 기계는 만들어낸다.


그 결과, 우리는 기술을 상상력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 자체에 상상력을 위임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상상하는 힘은 점점 인간의 손을 떠나고 있다. 기술이 보여주는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 우리는 오히려 ‘무엇을 상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 앞에 멈춰 서게 된다. 상상력은 무궁무진할 것이라 믿었지만, 이제는 그 무궁함이 알고리즘에 의해 대체되고, 조합되고, 반복되는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상상력의 ‘의지’마저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상상할 필요가 없는 시대는, 상상하려는 동기도 줄어드는 시대다. 이제는 무엇이든 검색하거나 생성해낼 수 있으니, 애써 머릿속에서 떠올리는 일이 점점 불필요한 수고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상상하려는 마음’ 자체가 사라지는 초기 징후를 목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종이책을 읽으며 조용히 자신의 머릿속에서 장면을 재구성하는 사람들이 더욱 빛나 보인다. 정답을 요구하지 않고, 해석을 위임하지 않으며, 서사와 문장을 따라가며 스스로 상상하는 일. 기술이 모방할 수 없는 바로 그 창조 행위 말이다.


상상력을 구현하기 위해 수많은 도구를 손으로 조작하고, 불완전한 기술을 보완해가던 시절. 그 시절의 낭만은 오히려 지금보다 더 인간적이었다. 기술이 상상력을 넘어서버린 지금, 다시금 상상력의 자리를 찾는 일이 중요해졌다. 기술을 숭배하지 않고, 기술을 도구로 되돌리는 일. 상상력이 기술보다 앞서 있던 시절처럼, 다시 인간의 자리에서 출발하는 일 말이다.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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