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아닌 자격으로 구분되는 미래에 대한 단상
AI의 발전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흐름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그 흐름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알지 못한 채 그저 빠르게 따라가고 있다. 기술의 속도는 감각을 앞지르고, 사람들은 불안과 기대가 섞인 마음으로 이 거대한 변화를 체험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 변화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목표로 움직이고 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AI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나뉜다. 지금 우리가 매일같이 접하는 것은 특정 기능에 최적화된 ‘좁은 AI’다. 번역, 추천, 이미지 생성처럼 한정된 영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인류가 최종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는 ‘범용 AI’, 즉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다. 인간처럼 사고하고 학습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지능을 가진 존재. 이 AGI의 등장은 단순한 기술 진보가 아니라 인류 문명의 구조를 다시 짜는 수준의 전환을 예고한다.
AGI가 향하는 목표는 명확하다. 첫째는 노화와 죽음의 극복이다. 생명공학과 인공지능이 결합하면서 인간의 유전적 한계를 초월하려는 시도가 이미 시작되었다. 둘째는 무한 에너지의 확보이다. AI는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새로운 에너지원의 가능성을 탐색하며, 언젠가 자원의 개념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셋째는 상대성이론과 우주의 원리를 해석하는 것이다. 인류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차원의 물리학적 구조를 풀어내고, 나아가 그 원리를 이용해 새로운 형태의 존재 방식을 찾는 일이다.
이 세 가지가 완성되는 순간 인류는 AI가 만들어내는 유토피아에 진입한다고 말한다. 늙지 않고, 죽지 않으며, 에너지의 제약 없이 우주를 넘나드는 세계. 그러나 나는 ‘유토피아’라는 말 자체를 신뢰하지 않는다. 유토피아는 본래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이며, 그만큼 실현 불가능한 이상향을 전제로 한다. AI 유토피아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또 하나의 신화이며, 기술적 낙관이 만든 허상일 수 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이 그 속에서 스스로를 잃는다면, 그것은 유토피아가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감옥이다.
더 무서운 사실은, 이 유토피아에 ‘입장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입장권은 자본과 계층, 국가와 권력에 따라 나뉠 것이다. 누가 먼저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가, 누가 가장 먼저 죽음을 늦출 수 있는가, 누가 우주의 이론을 활용해 또 다른 차원의 삶을 준비할 수 있는가 — 이 모든 건 ‘누가 더 먼저 유토피아의 자격을 갖췄는가’로 압축된다. 그 사회는 분명하게 나뉠 것이다. 미래에 존재하는 특권층은, 기술을 선점한 자들의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AI는 단지 직업을 대체하거나 일상의 자동화를 넘어서, ‘인간의 존재 방식’을 새롭게 정의하려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속도를 따라가기만 할 뿐, 왜 따라가야 하는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곧 ‘행복’의 기준마저 타인 혹은 시스템에게 위임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AI가 제안하는 ‘더 나은 삶’에 익숙해지는 대신, 그 기준 자체를 의심해야 한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다. 그러나 그 도구가 인간 실존의 방식까지 결정지으려 한다면, 거기엔 반드시 질문과 저항이 따라야 한다.
그 유토피아, 과연 내가 입장할 수 있는가?
그 물음에서부터 우리는 다시 AI와 함께할 미래를 구성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미래에 대해 아무런 결정권 없이, 그저 초대받지 못한 이방인으로 남게 될 것이다.
#AI유토피아 #AI입장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