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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우의 재정의]

비정형 지식의 시대, 무엇을 계승하고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by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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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노하우’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그 의미를 분명하게 정의하라고 하면 대부분은 막연한 감각으로 설명하거나 경험의 산물 정도로 치부해버린다. 흔히 노하우란 어떤 경험을 통해 얻어진 통찰을 타인에게 전수하거나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단순한 정의 뒤에는 다루기 어려운 본질이 숨어 있다.


노하우는 본질적으로 비정형적이다. 수많은 변수와 케이스 바이 케이스의 복잡성 위에서 축적된 경험의 총합이며, 마치 조직을 퇴사한 직원이 인수인계서로는 결코 다 담을 수 없는 암묵지의 영역과도 같다. 이 때문에 노하우는 항상 ‘기록 불가능한 것’, ‘오직 몸으로 체득한 것’이라는 한계 내에서만 존재해왔다.


한때 나는 이 ‘기록 불가능성’의 노하우를 실버산업과 연결지어 본 적이 있다. 귀중한 경험의 정수들이 사라지기 전에, 다음 세대에 어떻게든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보다 먼저 우리가 이 시대의 ‘노하우’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선행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는 정보를 수집하고 정제하고, 나아가 그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에 있어 전혀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텍스트, 이미지, 영상, 오디오까지 모든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시각화되고, 자동으로 아카이빙되며, 수많은 툴을 통해 정형화되고 분석된다. 이전에는 감각과 관찰에 의존하던 ‘노하우’의 수집과 전파가, 지금은 하나의 프로토콜처럼 구조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얻었다.


이러한 변화는 노하우에 대한 정의 자체를 바꾸고 있다. 더 이상 노하우는 ‘기록 불가능한 지혜’로만 머물지 않는다. 기록할 수 있고, 비교할 수 있고, 심지어 계량화할 수 있는 지적 자산으로 변화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모든 노하우가 수치화되거나 설명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에 접근하는 기술과 방법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새로운 정의 아래, 노하우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 특히 문화와 예술, 장인의 기술처럼 시간성과 해리티지(heritage)를 지닌 영역에선 더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단순한 업무 노하우와는 달리, 이들은 개인의 미감, 직관, 손의 감각, 시대의 정서를 포함한다. 명맥을 잇는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이 분야의 노하우는 후대에게 단지 ‘정보’로 전달되어선 안 된다. 그 가치를 분별하고, 계승의 맥락을 제공하며, 사회적 기준 속에서 다시 해석해야 한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하우를 남기는 법’이 아니라, ‘노하우를 새롭게 정의하는 감각’이다. 그것은 지식과 기술을 연결하는 법이자, 시간과 의미를 계승하는 문화적 태도이기도 하다.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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