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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의 본능]

공부할수록 참을 수 없는 것에 대하여

by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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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면 할수록 참을 수 없게 되는 건 모르는 게 아니다. 오히려 모르는 것은 언제나 새롭게 배울 수 있고, 의견이 다르면 대화를 통해 조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참을 수 없는 순간은, 누군가가 틀린 정보를 단언하듯 말하고, 그것이 아무런 저항 없이 퍼져나갈 때다. 그럴 땐 입을 닫고 있는 것이 미덕일까? 아니면 차라리 조심스럽게라도 바로잡는 것이 맞을까?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이것저것 알고 싶은 마음, 서로 다른 장르에서 알게 된 사실들이 뜻밖의 방식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또 다른 이해의 문을 여는 과정. 그렇게 연결되고 조합되는 지식의 쾌락은 공부를 지속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력이다. 공부를 할수록 나의 무지를 자주 마주하게 되고, 겸손해지고, 타 분야에 대한 존중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그런데 그 존중의 끝에서 이상하게도 ‘정정’이라는 덕목만은 점점 참을 수 없게 된다.


인터넷에서 마주친 이야기 하나가 오래 남는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참을 수 없는 것은 ‘정정’이다.” 사실이다. 대화에서 누군가가 단호하게 잘못된 정보를 말하고, 그것이 주변에서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여질 때 느껴지는 감각, 그것은 무지에 대한 안타까움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불편함이다. 차라리 모르고 있는 것이라면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틀린 것을 진실처럼 퍼뜨리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할 때, 속이 타들어간다.


문제는 그 정정이 항상 '좋은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그렇다. 누군가가 공공연히 무언가를 말하고 있을 때, 그것이 아무리 틀린 말일지라도, 그것을 ‘바로잡는 일’은 분위기를 망치는 것으로 간주되기 쉽다. 상대를 민망하게 하거나, 대화의 흐름을 끊는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정정보다 침묵을 택하고, 모른 척하거나 자리를 피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틀린 정보가 옳은 정보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면 할수록 우리는 이상한 양가감정에 시달린다. 바로잡고 싶은 욕망과 그로 인한 불편함 사이에서. ‘아는 척’하는 사람들보다 조용한 사람들이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거의 격언처럼 받아들여지지만, 그 조용함은 때로 무기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단지 알고 있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점점 더 자주 느낀다.


결국 필요한 것은 지식만이 아니다. 그 지식을 얼마나 잘 전달할 수 있는가, 그리고 상대방이 틀렸다는 것을 어떻게 알려줄 수 있는가, 그 ‘정정의 기술’ 역시 함께 익혀야 하는 능력이다. 단순히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얼굴을 지키고, 대화의 결을 유지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공부가 우리에게 진짜로 요구하는 덕목일지 모른다.

그러니까, 공부란 결국 ‘말할 자격’을 갖추는 동시에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연습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참을 수 없는 정정의 욕망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겸손함과 용기 사이의 균형을 배운다.


#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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