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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변화의 흐름에서 우리가 서 있어야 할 자리]

사라지는 것과 생겨나는 것 사이,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by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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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등장으로 인한 변화는 단순한 도구의 진화가 아니라 인류 문명의 작동 방식을 다시 쓰는 일이다. 이러한 거대한 변화를 이해하는 가장 명쾌한 방법은 단순한 프레임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 과거에 없었던 것이 생겨나고, 과거에 어려웠던 것이 쉬워지며, 과거에 쉬웠던 것이 사라진다는 것. 바로 이 변화의 세 가지 방향을 통해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점검할 수 있다.


먼저,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 생겨나고 있다. 대화형 인공지능과 이미지 생성기는 완전히 새로운 언어적·시각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만들어냈고, NFT를 통해 디지털에도 소유 개념이 부여되었으며, 자율주행이나 드론 배송은 이동과 물류의 기존 개념을 재정의하고 있다. 교육 역시 오프라인 교실이라는 공간을 벗어나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으로 변모하며, 학습의 형식과 장소를 근본부터 바꾸고 있다. 이것은 명확하게 ‘생겨나는 일들’이다.


다음은 과거에 어려웠던 것들이 쉬워지는 흐름이다. 한때는 전문가만이 가능했던 영상 편집이 이제는 Capcut이나 Runway 같은 자동화 도구를 통해 누구나 손쉽게 실행할 수 있고, 번역 역시 AI 기반의 자동 번역이 실시간으로 가능해졌다. 출판도 예전에는 계약과 승인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지금은 퍼블리시나 아마존 플랫폼을 통해 개인이 직접 출판할 수 있다. 음악 제작도 스튜디오가 아닌 간단한 루프나 샘플을 통해 완성되며 진입 장벽이 크게 낮아졌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쉬워졌다는 의미를 넘어서 경쟁의 문이 완전히 열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더 많은 사람이 더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건, 더 치열한 경쟁과 더 빠른 속도의 소모를 의미한다.


그리고 마지막,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은 과거에 쉬웠던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 정보전달형 유튜브 콘텐츠는 AI 요약 서비스나 자동 콘텐츠 생성기로 대체될 수 있고, 손으로 계산하던 회계나 단순 번역, 반복적인 디자인 작업은 자동화되며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이것은 Adobe 같은 거대 툴 기업이 위기를 맞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종이 신문과 케이블 뉴스는 정보 접근의 손쉬움 속에 매체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있고, 오프라인 소매점은 무인화와 온라인화의 흐름 속에 플래그쉽 스토어 혹은 체험형 매장만이 살아남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누구나 할 수 있었던 단순 작업들이 점점 더 ‘사라지는 직업’이 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진지하게 물어야 할 질문은 명확하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생겨나는 일’인가, ‘쉬워지는 일’인가, 아니면 ‘사라지는 일’인가. 만약 쉬워지고 있다면, 그 일은 곧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되고, 누구나 할 수 있게 된다는 건 시장의 경쟁이 폭발적으로 치열해진다는 뜻이다. 그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해석력, 감각, 그리고 진정성을 담은 스토리다. 이제는 ‘누가 더 잘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감동시키느냐’의 시대다. 따라서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역할은 기술이 아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스토리텔러의 자리다.


우리는 지금, 사라지는 일에서 서서히 이탈하고 있는가? 쉬워지는 일에 안주하고 있는가? 아니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이 자각이 없다면, 아무리 기술을 잘 다루더라도 우리는 곧 기술에 의해 잊혀질 것이다. 변화의 지도에서 나의 좌표를 찾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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